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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6. 2021

나는 아마 겨울에 죽을 거야

겨울이 싫어요

곧잘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1년 내내 겨울인 곳과, 1년 내내 여름인 곳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디서 살 거예요?” 반반 정도로 의견이 갈리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여름을 싫어하는 편이다. “추우면 껴입으면 되지만, 여름에는 답이 없잖아요.” 이런 대답이 흔하게 나온다. 나는 겨울을 싫어하는 쪽이라서, 이런 대답을 들으면 별로 공감할 수가 없다. 한 여름에 훌렁 벗어도 더운 것처럼, 한 겨울엔 아무리 껴입어도 춥기 마련인 것을.


나에게 추위와 더위란 반대 개념이기는 하지만 결이 좀 다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30도를 훌쩍 넘는 한 여름의 길거리를 걸을 때 그야말로 죽을 맛이기는 하다. ‘(더워)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죽겠다’는 말은 ‘너무너무 더워서 괴롭다’는 감정 표현에 가깝다. 반면 영하 십몇 도의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 길거리를 걸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추워) 죽겠다’는 말을 뱉으면서도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다. 여기에서 ‘죽겠다’는 말은 괴롭다는 감정표현이 아니라 '이러다 정말 사망에 이를 것 같다'는 객관적이고도 절박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더위와 추위를 받아들이는 감각은 모두 다르기에, 보편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더위보다 추위가 몇 배는 더 괴롭다.  


여러 풍문에 따르면, 세상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밥 말리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36살에 죽을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는데 (예수도 그 나이에 죽었으므로) 정말 그 나이에 죽었다.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그날 죽은 선덕여왕의 일화도 유명하다. 자신이 죽을 날짜를 예언하고, 그날 자살해 버린 수학자 카르다노 같은 사람도 있다. 그들처럼 정확한 날짜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나도 비슷한 예감을 한다. 나는 아마 겨울에 죽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기력이 실시간으로 유실되는 느낌이 든다. 드래곤볼을 보면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을 때 우주의 모든 생명체에게 무슨 크라우드 펀딩을 받듯이 작은 방울방울의 에너지를 조금씩 전달받고는 하는데, 내 몸에서 그런 식으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아직은 젊기에, 빠져나가는 만큼 억지로 보충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력이 조금 빠진다고 해서 주저앉을 정도는 아닌데, 좀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겨울잠을 자는 고슴도치마냥 초긴축상태로 에너지를 아끼며 버텨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새는 종종 로또를 산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로또를 산 뒤에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예산을 세워본다. 1등이 되면 무엇을 할까, 누구에게 얼마를 주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하고… 이런저런 계획을 잡아보면 십몇 억 이십몇 억 하는 돈도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장 자유롭게 쓸 몇 백만 원도 없으면서) 아무튼 나는 그런 상상 속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민을 가보는 것은 어떨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다. 물가가 싸고, 연중 따뜻한 해가 내리쬐는 나라. 그런 데서 추위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삼천리 금수강산의 사계절은, 특히나 겨울은 참으로 혹독하다. 아무래도 나는 적도 근처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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