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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28. 2021

브런치 6년 후기

브런치 감사합니다-.

모든 체대생들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문학도들이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나야말로 글 안 쓰고 책 안 읽는 국문학도였기 때문이다. 그게 딱히 부끄럽지도 않았던 것이, 주변의 대부분이 다 그러했다. 술이나 마시고, 게임하고, 과제에 치이고. 그냥 노닥거렸다.


그런데 그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무엇인가를 이렇게 꾸준히 해본 적이 있었나.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은 지금도 절친한 대학 동기의 소개였다. 글쓰기 플랫폼이 새로 생겼다고 했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없고, 심사에 통과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독특한 포맷이었다. 그런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다가 회원을 유치하지 못해 망한 플랫폼들을 수두룩하게 봐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 기대감도 없었다. 재미 삼아 성의 없이 쓴 글을 올려서 ‘작가 신청’을 했는데, 너무나 허탈하게 심사에 통과하는 바람에 더더욱 시시하게 느껴졌다. (2016년 당시에는 작가 신청이 아주 널럴했다. 지금처럼 실력 있는 작가분들이 삼수, 사수를 한다거나. 무슨 브런치 작가 되는 노하우를 판매하는 식의 분위기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친구가 다시 브런치 얘기를 했다. 본인이 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전 국민이 다 보는 포털 메인화면에 글이 올라가다니,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랑 비슷해 보이던 친구가 한참 위에 있는 것처럼 멋있게 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브런치와 글쓰기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건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이후였다. 당시에 나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진짜 이별’에 정신이 없었다. 하루 종일 불안했고, 외로웠고, 슬펐고, 그리웠다. 어떻게든 그 마음을 해결하고 싶어서 몸부림쳤다. 하염없이 영화를 보며 공백의 시간을 때웠고, 안정제를 복용하듯이 강박적으로 야동을 봤다. 쉴 틈 없이 게임을 했다.


그러다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겠다고 무슨 작심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한글 워드를 켜고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었다. 브런치에 올릴 첫 글을 쓰던 밤이 생생하다. 자취하던 룸메이트 친구들은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나는 낡은 도시바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벽에 기댄 채로 글을 썼다. 불을 끄고 있어서 얼굴에는 모니터의 푸른빛만 은은하게 비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음속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감정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 적기만 했는데도. 아주 담백하고 절절한 글이 써졌다. 태어나서 그렇게 긴 글을 한 호흡에 써본 것은 처음이었다. 소설가 박완서는 태어나 처음 쓴 소설(나목)로 등단했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압도적인 감정이 있으면, 그리고 그것을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간절함이 있으면. 글은 그냥 알아서 써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이별의 아픔을 모두 씻어냈다. 쓰면 쓸수록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잊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글을 쓰려고 없던 기억까지 짜내야 했다. 더 이상 새롭고 참신한 아픔이 생각나지 않았을 때, 더 풀어낼 추억도 없을 때. 비로소 내가 그녀를 완전히 잊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별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사용하면서 아픔까지 소진해버린 거였다.


글을 적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를 받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내 것인 줄만 알았던 슬픔이 보편적인 어떤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다. (한편 아쉽기도 했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별의 아픔이 그라데이션으로 사라졌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냥 지나가고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절실히 와닿았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하는 존재인 나는 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SNS의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곳,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어떻게든 남기려고 한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 건강하고 매력적인 육체들을 가장 좋은 각도로 담아 차곡차곡 남겨둔다. 간데없이 사라질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을 우리는 부지런히 남겨둔다.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에.


그런데 왜 순간순간의 생각은 사진처럼 남겨두지 않을까? 과거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궁금해하면서. 그것들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내가 순간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에 휘말렸는지, 누구를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는 손에 발린 손소독제처럼 차갑게 휘발시켜버리는 걸까? 생각도 바디프로필처럼 남겨두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책 <미성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교에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구석을 만들어 그 속에서 지냈다.


이 문장을 곱씹다 보면, 브런치가 나의 ‘구석’처럼 느껴진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실의할 때, 삶의 불운으로 좌절할 때,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지긋지긋해질 때, 두렵고 불안할 때, 외로울 때, 이밖의 여러 감정들이 나를 쥐고 흔들 때. 나는 브런치라는 ‘나의 구석’으로 들어와 숨었다. 이 ‘구석’에는 익명의 응원자들이 공감과 위로를 보내주기도 하니 도스토예프스키의 ‘구석’보다 더욱 따뜻한 공간일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하는 만큼, 브런치도 그러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곳에 마지막 글을 쓰고 영원히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남은 글들과, 지난 나의 생각들은 적어도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할 것이라서. 마치 앨범 같은 이곳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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