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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04. 2023

인공지능 앞에서 자신 없는 우리

영화 <크리에이터> 리뷰

큰 기대감을 가지고 <크리에이터>를 본다면 아마 실망하게 될 것이다. AI를 다룬 기존의 작품에 비해서 새로울 것이 거의 없다.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반복되며, 결말은 얼버무리는 느낌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인간과 지적인 로봇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은 인간인가?" "인간다움이란 뭘까?" 이미 익숙한, 어찌 보면 해묵은 질문을 반복한다.


<A.I.>,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애프터양>, <HER> 같은 작품들이 이미 있는데(한국에는 인공지능이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 내용의 <인류멸망보고서> 같은 작품도 있었다.) 왜 <크리에이터>는 새로울 것 없는 인공지능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을까?

<크리에이터> (2023)

<크리에이터>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환기한다. 뻔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두려움이다. ChatGPT가 초기 베타 버전으로 출시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인공지능을 주제로 같은 질문을 던지더라도 이제는 흥미로운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공포에 가깝게 느껴진다. 질문이 새로워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2023년에 다시 꺼내보니 새로운 질문처럼 느껴진다.


재난처럼 들이닥친, 이토록 생생한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성능이 두렵고, 멈춤 없이 발전을 거듭해 갈 상상할 수 있는 미래가 두렵다.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나?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인간다움을 정의하기도 전에 인공지능이 우리를 추월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상욱: 아직 생물에 대한 정의가 정확하지 않아요. 생물을 정의해 보세요.
현준: 에너지의 플로우가 있으면...
상욱: 그럼 자동차는 생물인가요?
현준: 노후화해서 없어지면 무생물인데 새로운 걸로 교체되며 유지되면 생물...
상욱: 유지하는 성향이 있으면 생물? 태풍은 2주 가까이, 마치 생명처럼 형태를 유지해요. 그러면 태풍은 생명인가요?
현준: ...
상욱: 상당수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어요.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복제를 하면 생명이라고 보거든요,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생명일까요?
채경: (노새처럼) 번식을 하지 못하는 생명체를 생명체로 봐야 할 것인가...
현준: 어렵네요.

- tvN <알쓸별잡> 3화 中


우리는 생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한다. 인간은 어떨까?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과 인간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인간다움을 기껏 정의해 놓았는데, 그 조건을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만족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탄생한다면? 그럼 우리가 가짜 인간이고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이 되는 걸까?


영화 중간에, 한 인물이 인공지능을 가리키며 '그들은 그저 프로그래밍된 것'이라 항변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몹시 찝찝하다.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희미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프로그래밍으로 동작하는 게 인간이니까. 인간의 행동과 감정이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와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것을 아니까. 조금 잔인하게 말하면 우리는 그냥 도파민을 좇는 기계일 뿐이니까.


그건 세돌이도 마찬가지 아니냐. jpg


인간에게는 예비된 죽음이 있지 않냐고? 유한성이 인간다움이라고? 유한성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면 인간이라고 인정할 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인간은 살아있지 않냐고? 기계와 다르지 않냐고? 그래서인지 <크리에이터>의 주인공은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다. 일부는 기계로 대체된 인간이다. 인간과 기계, 기계와 인공지능을 모호하게 섞어 놓았다. 태세우스의 배가 모호한 지점을 계속 만들어내듯, 산 것과 죽은 것, 인공과 자연을 구분하기 어렵다.


AI를 다루는 많은 영화 속에서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 인간보다 더 이타적이거나, 창조적이고, 똑똑하고, 용기 있고, 관대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든 것에서조차 밀려난 우리에게도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까.


계속해서 인공지능 이야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물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더 쓸모 있는 존재가 탄생하더라도 ‘인간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나로서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생각하면 두렵다. ChatGPT가 하루아침에 나타났던 것처럼, 예상보다 훨씬 현실적인 실물 인공지능 로봇이 덜컥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들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다.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철학적인 토론이 가능한 인공지능 중에서 무엇이 인간과 가까운 존재인지 고민해야 해서 막막하다. 내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섬짓하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흔쾌히 대답할 수 없어서 자신 없다.


"하지만 내가 진짜 묻고 싶은 건 이거야.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정 영혼이 있는가?"

- 베르나르 베르베르,『나무』,「내겐 너무 좋은 세상」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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