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Nov 04. 2023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킬링 로맨스>

약빤 영화 <킬링 로맨스>

2023년 4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이직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옮긴다는 게 맘처럼 쉽지 않아서 힘들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취업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합격 불합격이 문제가 아닌 상태였다. 채용공고 자체가 없었고 지원할 회사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살은 거의 6kg이 빠졌고, 압박감은 정점이었다. 솔직히 <킬링 로맨스>라는 영화가 개봉한 줄도 몰랐다.


뒤늦게 <킬링 로맨스>를 챙겨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 그래도 이 영화는 봤어야 했다'는 거였다. 그랬다면 나는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쾌하고, 용기 있고, 나사 빠진 영화를 한국에서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도전적인 스토리나 설정부터 심각한 호불호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극찬을 받기에도 충분하고, 얼마든지 폄하받을 수도 있다. 양쪽 모두를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실컷 웃었고, 한편으로 감탄했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혼자 방에서 손끝으로 박수를 쳤다. 탁탁탁탁.


영화를 수도 없이 보면서, 영화관도 자주 바뀐다. 최근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잘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화를 기술적으로 분석하면서 연출 전반의 세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가와 분석에 매몰되면 정작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삶과 영화를 연관 짓고, 내 감정과 인물의 감정을 일치시키고, 그가 느끼는 딜레마 속에서 함께 고민하는 기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개연성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가 있다, 완벽하게 말이 되는 영화는 정말 재미없는 영화일 것이다'와 같은 취지로 이야기한 것을 보았는데, 이 말에 정말 공감했다.


훌륭한 영화는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판을 키운다. 앞 뒤가 조금 맞지 않아도 일단 전진하고, 때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터뜨리고,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 속에 주인공을 던져 넣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개연성보다, 효과적으로 '무엇'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킬링 로맨스>는 정말 용기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돼서 누군가는 몰입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무척 재밌지만. 중간중간 늘어지기도 하고, 힘이 쭉 빠지기도 하고, 2절 3절 뇌절에 이르는 바람에 반대로 짜증이 날 정도의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NG인가 싶게 어설픈 장면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참 좋았다. 적당히를 모르고 그냥 끝까지 가버리는, 그 용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게 보인다. 안전하고 매끈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이왕 시작한 거 갈 때까지 가보자'는 그 마음이 가슴에 콱하고 꽂혔다. 그렇게 제한 없이 열린 마당에서 배우들이 작정하고 뛰노는 모습이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영화의 스토리와, 내가 느낀 메시지들, 장면마다의 감상을 해설하는 식으로 리뷰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조금의 스포일러도 하고 싶지 않아서 적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아봤으면 좋겠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음주운전 차에 치이는 것처럼 이 당혹스러움을 즐기면 좋을 것 같다. (제발) 기술적으로, 분석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로 이 영화를 보지 말고. 그냥 마음을 활짝 열고 감상해 보시기를. 이 천진난만하고 무해한 이야기를 저항 없이 즐겨보셨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