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질문들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하면, 사람들의 질문은 대체로 한결같다. “어떤 영화(혹은 장르)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다. 벌써 10년 가까이 영화감상을 제1의 취미로 하면서도 이 질문들에는 늘 답하기가 어렵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좋아하는 영화가 많기는 한데, 그 영화들을 매끈하게 이어주는 단 하나의 이유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굳이 하나를 특정해 본다면 '재미있다'는 것이겠지만, 그걸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다.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 것도 난감하다. 나에게 영화라는 건 점수제라기보다는 등급제에 가깝고, 만점이라 생각하는 영화들이 수십 편이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영화는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완벽해서,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그래비티>라고 답하거나, <걸어도 걸어도>라고 답하거나, <비포 미드나잇>이라 답하거나, <헤어질 결심>이라 답하거나, <언컷 젬스>라고 답하거나, <더 레슬러>라 답하거나, <이터널 선샤인>이라 답하거나, <멋진 하루>라고 답하거나, <기생충>이라 답하게 된다. 이 영화를 말하면 저 영화가 눈에 밟히고, 저 영화를 말하면 또 다른 영화가 밟힌다. 대답을 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불편하다.
“나는 이러이러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추천해 줄 만한 영화가 있느냐” 같은 질문을 좋아한다. 영화 제목을 들으면, 완전히 다르지만 어쩐지 유사하게 느껴지는 영화들이 막 떠오른다. '이것도 보시구, 저것도 한 번 보세요. 정말 좋거든요.' 하면서 말이 많아진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어떤 게 가장 좋으셨나요?”라거나, “좋아하는 영화 중에 지금 떠오르는 걸 아무거나 말씀해 주세요”같은 질문도 좋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앞으로도 수없이 받을 질문 같아서,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보려는 것이다. 헐리우드 작법에 충실하지 않은 영화, 내용이나 인물이 입체적인 영화, 주제나 결말이 모호한 영화… 그런 조건들이 떠오르지만 후련하지 않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명쾌한 단 하나의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 싶다.
2024년에도 영화를 꾸준히 볼 것이다. 연말이면 한 해 동안 본 영화를 정리하고, 영화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적는 것이 루틴이 되었는데. 모이고 쌓이는 기분이 참 좋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데까지 보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커버 사진은 올 한 해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이정홍 감독의 <괴인>, 데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 등...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좋은 영화들이 많았지만.)
별표(★)=강력 추천 / (위부터 감상한 순서)
1. 어나더 라운드(2020)
2.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
3.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제대로 고른 신작)(2017)
4. 아바타 : 물의 길(2022)
5. 원더 휠(2017)
6. 영웅(2022)
7.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2022)
8. 바빌론(2022) ★
9. 애프터썬(2022)
10. 프랭키와 쟈니(1991)
11. 접속(1997)
12.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24기 :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2016)
13. 본즈 앤 올(2022)
14.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
15. 서치2(2023)
16. 1984 최동원(2020)
17. 스즈메의 문단속(2022)
18. 머니 샷 : 폰허브를 말하다(2023)
19.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
20. 더 웨일(2022) ★
21. 비상선언(2022)
22. 머더 미스터리(2019) ★
23. 파벨만스(2022) ★
24. 별의 목소리(2002)
25. 머더 미스터리2(2023)
26. 한산 : 용의 출현(2021)
27.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
28. 낯설고 먼(2020)
29. 여인의 향기(1992)
30. 물안에서(2023)
31. 끝나지 않는 세 번째 데이트(2023)
32. 프로포즈(2009)
3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2023) ★
34. 브로큰 데이트(2010)
35. 키스 더 걸(1997)
36. 이니셰린의 밴시(2022) ★
37. 감독님 연출하지 마세요(2017)
38. 생산적 활동(2003)
39.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2023)
40. 세자매(2020)
41. 플래시(2023)
42.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
43.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
44. 엘리멘탈(2023)
45.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
46. 정글 크루즈(2021)
47.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
48. 라스트 킹(2006)
49. 스토커(2013)
50. 레인메이커(1997)
51. 사이드웨이(2004) ★
52. 어나더 어스(2011)
53. 날 미치게 하는 남자(2005)
54.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 ONE(2023) ★
55. 브레이브하트(1995)
56. 버즈 라이트이어(2022)
57. 오토바이와 햄버거(2021)
58. 비치(2000)
59. 시카고(2002) ★
60. 올빼미(2022)
61. 졸업반(2016)
62. 스내푸(2023)
63. 밀수(2023)
64. 드림(2022)
65. 선샤인(2007)
66. 실종(2021)
67. 염력(2017)
68. 콘크리트 유토피아(2021)
69. 빅(1988)
70. 오펜하이머(2023)
71. 럭키(2015)
72. 수퍼배드(2007)
73. 무게(2012)
74. 카우(2021)
75. 아이 엠 러브(2009) ★
76. 니모나(2023)
77. 잠(2022) ★
78. 조한(2008)
79. 하나와 앨리스(2004)
80. 오토라는 남자(2022)
81. 슬픔의 삼각형(2022)
82. 틴더시대 사랑(2019)
83.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
84. 익스트림 페스티벌(2022)
85. 프랙처드(2019)
86. 귀를 기울이면(1995) ★
87. 크리에이터(2023)
88. 쥐잡이 사내(2023)
89. 거미집(2023) ★
90. 화란(2023)
91. 화이트 노이즈(2022)
92. 빈집(2004)
93. 도쿄!(2008)
94. 플라워 킬링 문(2023)
95.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016)
96.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97. 혼자 사는 사람들(2021)
98. 틱, 틱...붐!(2021)
99. 문맨(2022)
100. 킬링 로맨스(2021) ★
101. 화이트 타이거(2020)
102.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2020)
103. 괴인(2022) ★
104. 치히로 상(2023)
105. 더 킬러(2023)
106. 이키루(1952) ★
107. 프레디의 피자가게(2023)
108. 불릿 트레인(2022)
109. 도약선생(2010)
110. 괴물(2023) ★
111. 오늘 영화(2014)
112. 비공식작전(2022)
113. 유혹의 계절(2017)
114. 남자사용설명서(2012)
115. 열혈남아(1987)
116. 사랑의 행로(1989) ★
117. 런치박스(2013)
118.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119. 서울의 봄(2023)
120. 아는 여자(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