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마음으로.
2022년에는 48편의 영화를 봤다. 한달에 네 편 정도 영화를 보면 48편이 되는 것이니, 이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소개하기에는 어쩐지 조금 민망해진 것 같다. 한 해 100편도 넘게 본 지가 5~6년이 되었는데 매년 완만하게 줄어들더니 올해는 확 떨어졌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215편의 영화를 보았던 2018년의 나는 오히려 지금보다 바빴다. 그때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국어과외를 하며 살았는데, 일이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있었다.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낮부터 아주 늦은 밤까지 고양시 일대를 떠돌며 수업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열심히 쓰고, 주 2회 대학원에서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200편을 넘게 봤다.
틈틈이 봤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학생의 집으로 이동하는 10~20분 동안 영화를 보고 잠시 끊었다가 다음 수업을 가는 동안 이어서 보고 다시 끊었다가 다음 학생에게 가는 동안 이어서 보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서 보고... 그렇게 거의 이틀에 한 편 씩 보았다. 그렇게 보면 영화가 집중은 되냐며 내 무비라이프를 비웃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예리한 감수성으로 영화에 최적화된 더듬이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아무리 쪼개서 봐도, 작은 화면으로 봐도 감동적이었고, 훌륭했다.
올해는 직무를 전환하기 위해, 이직 준비를 하느라고 바빴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앞서 밝힌대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영화를 볼 시간이 있어도, 뭔가 영화를 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는 것도 아니고, 안 노는 것도 아닌 시간을 많이 보냈다. 공부도 안 되고, 하기도 싫고, 집중력도 바닥이라서 노력을 하지는 않는데 또 그렇다고 놀기에는 불안하고 괜히 찔려서 멍-하니. 어설프게 쉬었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놀지도 못하고. '노력하지 못할 지언정 최소한 놀지라도 말자.' 하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허송세월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올해도 여전히 좋은 영화들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일부는 극장에서, 또 OTT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예상한 것처럼 몇몇의 좋은 영화들은 나를 언제나처럼 압도하고. 내 머릿속에서 마구 폭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라든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예상치 못하게 실망스러워서 날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감동을 왕창 주는 좋은 영화들도 꽤나 있었다.
내일 모레면 새해다. 또 어떤 좋은 영화들이 나를 찾아올 지, 기대가 된다. 적어도 몇 편은 내 인생을, 정신을 온통 뒤흔들 것이다. 매년 그런 작품들이 있었다. 확정된 미래다.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나를 찾아오고, 흔들고, 잊힐까. 설렌다. 내년에도 좋은 영화를 많이 보아야겠다.
2021년 말에 쓴 글 <2021년 본 영화 116편> 말미에 나는 위와 같이 썼다. 올해에도 여전한 마음이라서 새롭게 쓸 말이 없다. 어떤 영화들이 나를 찾아올 지 기대하는 같은 마음으로, 올해도 살아보려 한다.
커버 사진은 올 한 해 가장 감명 깊었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별표, 강력추천영화
습도 다소 높음
드라이브 마이 카
성룡의 미라클
제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하하
티탄
뮌헨
미드90
리코리쉬 피자
베네데타
플라이트 ★
스펜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녹색광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유니버스
스파이의 아내
아메리칸 허슬
미드소마
나이트메어 앨리 ★
범죄도시2
카페 벨에포크
브로커
탑건: 매버릭
토르: 러브 앤 썬더
헤어질 결심 ★
외계+인 1부
캔디
썸머 필름을 타고! ★
죽여주는 여자
애프터 양
허슬
쉰들러 리스트
헌트
빌리진 킹: 세기의 대결
놉
공조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
태양은 가득히
폴: 600미터
보일링 포인트 ★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나잇&데이
송곳니
자산어보
스턱 인 러브
영웅(장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