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Jan 02. 2024

새해의 첫날부터 감기에 걸리는 기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월의 마지막날, 목에서 익숙한 까끄러움이 느껴졌다. 편도선이 붓고 있었다. 첫 증상이 느껴지면 보통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된다.


타고나게 큰 편도선을 가지고 태어나서 나는 이 증상을 정말 수도 없이 겪었다. 대응하는 방법도 능숙하다. 가능한 한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상책이다. 몸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약국표 비처방약 말고, 의사 선생님이 따분하고 무신경하게 처방해 주는 약을 지어먹어야 한다.


그리고 두 시간 간격으로 비타민C를 먹는다.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몸에게 안심을 줄 수 있다.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으니 걱정 마’ 하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몸을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체온을 따뜻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후리스나 깔깔이를 입는다. 물을 자주 먹거나 사탕을 물고 있음으로써 목을 건조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을 아무리 자주 마시고, 비타민C에 처방약까지 복용해도 편도선염, 이른바 목감기는 하루 만에 낫지 않는다. 악화하지 않을 방법을 이행하는 것까지가 나의 몫이고, 그다음은 오로지 시간에게 맡겨야 한다.


1월 1일 아침, 눈을 뜨자 역시나 편도가 더 부어있었다. 새해 계획한 일들이 많은데… 첫날부터 플랜을 망가뜨리기가 마음에 걸렸다. 생각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적어놓은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미리 골라둔 책을 읽고, 헬스장에 가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사실 편도선이 부었을 때는 그냥 쉬어야 한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직무 관련한 공부를 잠깐 했다. 그러다 하루가 다 가버렸다. 계획한 모든 일들을 처리해서 개운했지만 몸 상태는 어쩐지 더 아슬아슬해졌다.


1월 2일 화요일, 나는 지금 병원에 와 있다. 연휴가 끝난 이비인후과는 사람으로 가득 차서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다. 기약 없는 진료를 기다리며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심심하니까 별 이유 없이 걸린 감기에 의미 부여도 해 본다. 올해는 지독하게 운이 좋으려나. 긍정적인 미신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올 한 해 겸손하라는 계시인가. 경계하는 마음도 가져보고, 미리 아프고 치워버리라는 내 몸의 통 큰 배려인가. 정신 승리도 해 본다. 아, 지루하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민 교수님은 몇 년 전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라는 글에서 '큰 행복보다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큰 행복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므로 목표로 적당하지 않고, 작은 근심은 내가 크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라고.


새해 첫날부터 불평할 일이 목감기 같이 작은 근심뿐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꽤나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는 것만 보지 않으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