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힘든 당신에게

- 이별 후 1년

by 서댐


작년 9월. 2년 가까이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2년이면 그리 오래 만난 것도 아니지 싶은데, 내 한정된 20대의 2년이라고 생각하니 꽤 긴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일 모레면 다시 9월이 돌아온다니. 지난 시간을 조금 되돌아보게 됐다. 아직도 여기 여전히 남아있는 이별 직후의 글들과 몇 달 단위로 끄적인 글들을 다시 훑어보면서 ‘이렇게 이별을 견뎌왔구나.’ 스스로에게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이별. 해보니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다. 외롭기도, 편하기도 했다. 나는 슬플 땐 원망했고, 기쁠 땐 미안해했다. 외로울 땐 회상했고 편할 땐 씻은 듯이 잊었다. 그런 감정의 반복을 수도 없이 느끼면서 작은 혼란이라고 해도 좋을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오늘은 그걸 좀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 당신의 이별엔 이유가 있었다.

이별 후엔 그녀가 지뢰처럼 내 주위에 존재했다. 무심결에 밟게 되는 지뢰처럼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그녀와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냥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한동안 완전히 무너뜨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처럼. 마음속에 그 침묵의 폭발음이 하루에도 자주 터졌다.


하루는 뭘 좀 사려고 핸드폰 어플 검색창에 손가락을 툭 찍었는데, 그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던 예전의 기록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나는 또 완전히 풀이죽어서는 그녀의 웃는 얼굴과 선물을 주던 희미한 하루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참 이상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헤어진걸까?

해답은 간단했다. 나는 내가 지금 기억하는 것만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 지나간 날들은 자꾸만 미화된다. 내가 슬프고 힘들수록 더.


우리의 헤어짐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우리의 연애는 늘 아름답지 않았다. 인생이 늘 행복할 수 없듯 인생에 담긴 사랑도 늘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미숙했던 탓도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붙어있다보면 분명 어떤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없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런 문제들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에 칼로리가 높은 것처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연애가 주는 만족감만큼 큰 책임도 따른다. 혼자인 것보다 신경 쓸 것도, 양보할 것도, 포기할 것도 많아진다.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이별 직후, 연애의 모든 괴로움이 즉각적으로 해소되는 데에 있다.

그녀를 만나면서 나를 짓누르던 그 불편함들은 이별과 동시에 사라지고, 나는 나에게 그런 고통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기억하려고 해도 몸에 와닿는 괴로움이 없으니, 피상적으로 이해될 뿐 와닿지 않았다.


반면 나의 몸은 연애가 주던 만족감의 공백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됐다.

결론적으로 나는 연애의 기쁨만 상실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짊어지고 있던 고통은 모두 까먹고, 두둑히 가지고 있던 그 행복만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이별에 힘들어하는 당신도 분명 헤어짐의 이유가 있었다. 만족감이 그 괴로움을 상쇄할 만큼 컸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거다. 우리는 감정의 적자상태를 이기지 못했다. 당신이 헤어짐을 결심한 이유는 생각보다 당신에게 치명적이었다. 와닿지 않아도 떠올려보기를 권한다.


2. 당신의 아픔은 이기적이다.


이별이 힘든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별의 아픔은 얼마나 자주 당신을 괴롭히냐고.

물론 헤어진 지 일주일, 혹은 한 달 정도라면 하루종일 아플 수도 있겠다. 병에 걸린 것처럼 우울하고, 입맛도 없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일종의 폐인상태일수 있겠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처음보다 확연하게 웃는 일이 많아지고 몇 시간씩 생각이 안 나기도 할 거다.


시간이 약이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당신의 아픔이 꽤 이기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별 후,

짧으면 몇 분에 한번씩, 길면 몇 시간에 한 번씩 그녀를 떠올리던 어떤 날. 나는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잊은듯 하면 다시금 나를 괴롭히는 그녀를 원망하면서도, 결핍을 느낄 때만 그녀를 떠올리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냉정히 생각해보니 나는 결핍을 느낄 때만 그녀를 떠올렸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늦은 밤. 침대에 누운 그 외로운 시간과,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커플들을 볼 때,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놀 때는 잊고 있다가도 그 무리 속에서 문득 피로감을 느낄 때 그녀가 툭 튀어나왔다. 새로운 여자와 데이트를 할 때는 그녀가 생각도 나지 않다가, 내 옆의 여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그 찰나에 다시 네가 떠올랐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는 이별 후의 그 자유로움을 마음껏 즐기다가도
그 혼자만의 여유가 물릴 때는 비겁하게 그녀를 떠올렸던 거다.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절실히 그리워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신경쓰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을 동시에 갈구하는 이기심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자주 느끼면서 부끄러워 했다. 이별이 힘든 당신은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마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3. 당신은 성장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별을 통해 성장하고 있거나 성장했다.


아기가 완전히 걷기 위해서 만 번의 넘어짐이 필요하다고 한다. 만 번이라는 통계가 정확하냐를 떠나, 이 말에서 무엇이든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적어도 수천 번의 넘어짐이 피할 수 없이 예정된 것처럼,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이별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겪지 않을 수 없는 그 이별을 차례차례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나의 경우 걸음마의 균형을 찾듯 나만의 사랑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를 통해서 새로 배웠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연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실수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배웠으니, 우리가 조금만 성숙한 반성을 한다면, 아마도 다음에는 그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거다.

이별 후의 그 고독한 시간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며 혼자서 외로움과 정면으로 붙어볼 수 있는 어쩌면 길게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지난 1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휴가처럼 즐겼다.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찬찬히 돌아볼 수도 있었다. 몇 번의 연애 기회가 있었으나, 조금 더 신중해졌다. 후회없는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보고싶었지만 막연히 미루던 영화를 한 달에 20편 씩 보고, 배우고 싶던 운동을 배운다. 무언가 마음에 차오를 때마다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부터 이런 이상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치열하게 극복하려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편, 이렇게 주제넘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아픈 이별을 완벽히 졸업했냐고 하면 사실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정말 사랑스러웠던 그녀를 자주 그리워한다. 나에게 이런 추억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고마워하면서도 종종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일주일 쯤, 정말 마법처럼 그때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내 수명의 몇 년 쯤을 깎아버린대도 흔쾌히 그녀와의 시간을 선택할 만큼 행복했던 그때의 시간을 나는 자주 아쉬워한다.


하지만 이 그리움은 내가 진짜 사랑을 했다는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남은 것이지 더 이상 나를 파멸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이별은 나를,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이 주저리 풀어놓은 글을 마치면서, 이별에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아픔의 크기만큼 더 큰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을 다해 사랑을 경험한 당신이 정말로 멋있다고.

아픈 만큼 진심으로 사랑한 당신의 이별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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