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복습

- 이별이 힘든 당신에게

by 서댐

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큰 실수였다.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현실에서의 이별은 순간이었다. 이어져오던 만남은 이별이라는 그 짧은 순간을 지나는 순간 영원처럼 멀어지고 만다.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 어색한 시간들은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생각해보니 실수였어.’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되돌리기엔 늦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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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절반을 사랑했고, 나머지 절반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기에 결국 이별했다. 내가 헤어진 것은 사랑할 수 없는 절반의 그녀였고, 이별 후에도 그녀의 절반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 이어진 시간동안 나는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의 절반을 잊기 위해 몸부림쳤다. 당연히 쉬울 리 없었고, 그래서 여러 글들을 남겨야 했다.


도대체 나의 이별은 왜 그렇게 더뎠던 걸까. 당신의 이별은 왜 그렇게 아픈가.


나와, 당신은. 이별을 너무 많이 복습하며 산다.


1.괜찮은지 자꾸 확인한다.

괜찮고 싶을수록,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실제로 이별 직후 되게 행복했다. 남자는 이별한 후 후련함을 느끼다가 점점 힘들어진다는데, 나도 그런 뻔한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약간 어색하고, 적적하긴 했지만 굳이 시간 내서 연락할 필요가 없다는 게 편했다. 친구들에게 이별을 알리고, 술 약속을 잡고 깔깔거리며 술을 마셨다. 다음날도 너무 멀쩡해서 여자친구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 이렇게 괜찮아도 괜찮은 걸까.’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느새 지뢰가 되어 내 반경 무수한 곳에 숨어 있다가 뻥뻥 터지며 내 심장을 박살냈다. 그때부터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녀와 하던 농담들, 그녀의 표정 같은 것들이 틈 만나면 내 시야를 덮쳤고 나는 그때마다 비틀비틀하며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됐다. 밤이 되면 그 정적을 견딜 수 없었다. 공백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허덕였다.


괜찮지 않은 내가 너무 싫으니까, 자꾸만 괜찮을 때마다 괜찮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 지금은 좀 괜찮네.’ ‘어. 오늘은 좀 괜찮네.’


하며 얼른 이 아픔에서 탈출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확인에 있었다. 괜찮지 않을 때마다 나는 이별을 복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별했다는 것을 복습하면서 나 자신을 더 괜찮지 않은 상태로 만들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정말 괜찮은 사람은 그걸 확인할 생각조차지 않는다는 거였다.


2. 잊었는지 자꾸 확인한다.


비슷한 얘기다. 나는 그녀를 잊었는지 너무 자주 확인했다. 잊으려는 노력은 모든 이별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 망각이라는 건 노력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는 십 수 년간의 정규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것들을 외우곤 했다. 그래서 기억이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니 외워지더라, 하는 경험이 학습되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한국사도 외웠고, 영어 문법도 외웠고, 수학 공식도 외웠었다. 그런데 노력으로 무언갈 잊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부터 LOVE라는 영어단어를 잊어볼까? 잊혀질까?


잊으려는 노력은 기억의 복습이 된다. 그녀를 잊으려는 나의 노력은 오롯이 그녀를 복습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그녀를 잊으려고 애썼다. 매일 매일 얼마나 잊었는지 확인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날 때마다 내가 그녀에게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했다. 이제와 생각이지만 그때마다 잊혀질수도 있었던 그녀는 나에게 복습되어 가까워졌다. 그래서 나는 몸부림 칠수록 깊게 빠져드는 늪같이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없었다.

다 잊었다는 마음도 결국 그녀 생각이었다.

나는 피곤할 때 편도가 자주 붓는 편인데, 편도가 한참 부어 있다가 거의 나을 때쯤 목에 약간 걸린 듯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때 괜히 헛기침을 하며 ‘이제 다 나았나?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혼자 확인하고는 한다. 근데 목이 아예 괜찮아지면 그런 확인 작업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그냥 괜찮으니까 괜찮은지 확인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이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든 당신이든 이별을 너무 자주 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 얼마나 행복했는지 떠올린다.


이기적이다. 실컷 힘들어서 헤어져놓고는 헤어진 후에 좋았던 것만 떠올린다. 우리는 지나간 것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나, 중 고등학생 때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는 일과 비슷하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는, 그때가 좋았지. 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와 드디어 대학생이야! 이제 자유다! 그런 환희만 가득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거짓이었을까? 아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닭장 같은 교실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던 그 수업들은 분명 너무나 답답했다. 우리는 그 생활을 자그마치 12년이나 반복했고, 드디어 성인이라는 자격을 얻었을 때 비로소 행복했다.


우스운 건 나이가 들수록 중,고등학생 때의 좋은 일들만 떠올린다는 것이다. 당장 그 시절로 보내면, 매일 아침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서 엎드려 자다가 혼나는 일은 똑같이 반복될 것인데도, 그때의 아름다움을 과장해서 회상한다.


나는 군대에서 8시간을 내리 자본적이 별로 없었다. 늘 새벽시간에 여러 보초근무를 서느라 늘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전역하고 사년이 지난 지금. 동기나, 선,후임들을 만나면 그때의 재밌었던 일들만 풀어놓고 낄낄댄다. 한참 떠들고 있으면, 머리를 빡빡밀고 자유라곤 없던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통은 항상 현실에만 존재한다. 지나간 고통을 생생히 떠올리기에 사람의 회상 능력은 역부족이다. 하지만 행복이란 건 현실에서 음미하기엔 너무 짧고, 그 여운이 너무 긴 법이라 우리에게 오랫동안 아름다운 끝 맛을 남긴다.


연애의 날, 서로간의 그 아름다운 순간이 어찌 없을 수 있으랴. 그리고 그걸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관계의 파국을 맞게 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아름다움을 저버리면서까지 연애가 끝났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깊은 스트레스나 고통이 있었다는 뜻이다.

헤어진 뒤에 행복했던 순간을 자주 떠올리는 건, 부질없고 불공평하다. 쉽지 않음을 알지만 그로 인해 혼란했던 나로서는 당신에게 이런 조언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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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무리.


이별과 연애하기는 내 이별 모토였다. 이별의 아픔을 억지로 지울 수 없다면, 그리고 그 쓸쓸함이 나에게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별과 연애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가 마무리되는 지금 ‘이별과 연애하기’라는 매거진은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그냥 내 이별에 대한 생각을 어디엔가 풀어놓고 싶어서 적었던 글이, 몇 번은 꽤 큰 관심을 받기도 해서 신나서 적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 이별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제 정말 괜찮아져 버렸구나. 처음엔 나보다 이별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머리 싸매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더 이상 이별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누구에게나 기만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이별과 연애해야 할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싶은 진심은 여기 가득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별을 했을 것이고, 내일도 누군가는 이별할 테다. 그들은 아파하다가, 이런 저런 글을 타고 타고 넘으며 내 블로그에 닿을 수도 있겠다. 당신의 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안다. 사실 나도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녀가 보고싶은 날은 종종 있다. 아마 평생 이런 마음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무 개가 넘는 글을 통해 그녀를 복습했으니까. 사랑이라는 감정과 별개로, 나는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당신도 나처럼 다 잊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외로운 날보다 외롭지 않은 날이, 슬픈 날보다 기쁜 날이 더 많이 찾아올거다. 그때쯤이면 비로소 이별에 대해 하루종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이어질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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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별에 힘든 당신. 힘을 꼭 내세요. 아플 때는 아파하시고.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시고, 슬플 때는 슬퍼하시다가 또 기뻐지면 기뻐하세요. 아무렇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마시고, 주어진 행복은 행복대로 음미하세요. 길지 않은 삶을 나름대로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에게 향기가 있다는 말을 매번 공감하면서 살아갑니다. 당신의 향기에 알맞은 새로운 사랑을 언젠가 다시 만나서, 씻은 듯이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늘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다가올 2018년 새해에도 여전하게 건강하세요.


이별과 연애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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