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랑은 없다

- '실패한 사랑'은 비문이다

by 서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랑에 실패라는 단어를 연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과 중심의 풍토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결과를 통해 판단하려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생각엔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자친구와 헤어질 때마다. 결국 헤어졌구나, 이번 사랑도 실패구나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이별을 차근히 겪으면서, 그게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구절이 있는데,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의 인생은 이력서에 기록되지 않는다'고.

이력서에는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일을 했고, 언제 결혼을 했는지 기록될 수 있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온 대부분의 하루들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들이라는 거. 그러니까 그 결과뿐인 몇 줄로는 결코 내 인생을 가득 채운 일상들을 알 수 없다고.


인생이 요약될 수 없듯 사랑도 요약될 수 없다.


사랑도 ‘결국 그렇게 끝났다.’ 라는 말로 요약하거나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은 무수한 일상이었다. 사랑은 수없이 반복되었던 우리의 인생이었다.


1. 사랑은 과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사랑이 결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한 걸까? 사랑에 완성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실패가 있다면 분명 성공도 있어야 하는데, 도통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체로 완제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어도 반나절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다시 배가 고파졌다고 해서 나의 식사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먹는다는 것은, 먹는 순간에 유효했고. 한동안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건 아주 자연스럽다.


사랑이 끝났을 때, ‘결국 이렇게 끝나버렸네. 감정소모만 됐어. 상처만 받았어. 이번 사랑도 실패야.’ 이런 생각을 해본적 있다면, 완전히 틀렸다. 나에겐 이런 말들이 배가 꺼진 후 식사를 후회하는 사람의 말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사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사랑으로 행복했다. 사랑은 사랑하는 동안 완벽했다.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게 했다. 그게 전부다.

사랑은 사랑했던 그 순간. 과정과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2. 그래서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 속에서 몇 번, 사람에 따라 많게는 십 수번의 사랑을 겪는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사랑에는 그 숫자만큼의 이별이 짝 지어져 있다. 모든 시작은 끝으로 마무리 되는 법이다. 학교도, 어떠한 활동도, 아르바이트도, 직장생활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은 조금 아름다운 말 같고, 회자정리(會者定離)는 확실히 맞는 말 같다.

사랑이 끝나면 이별이 온다. 사랑은 늘 완벽한 상태로 있다가, 그게 끝나면 이별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실패하면 이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늘 사랑은 사랑 그대로 있고, 그게 물러간 다음. 우리에게 이별이 다가온다.

실패한 사랑은 없고, 그저 사랑 이후의 이별이 있다.


3. 외로움


외로움은 사랑의 부작용이 아니라, 이별의 부작용이다. 이별은 사랑과 공존할 수 없고 외로움은 이별의 순간에 찾아오니까.


(물론 사랑의 과정에서도 외로움을낄수 있다. 일종의 착각이 아닐까, 사랑하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잠시 밀려가는 사이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별 후에 외로움이 닥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건 사람의 인생이 늘 외롭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완벽한 감정을 통해 우리는 늘 존재해야 했던 외로움이라는, 그 자연스러운 감정과 멀어질 수 있었다.


이제 그 외로움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사랑이 끝나면 외로움은 다시 우리를 무겁게 누르게 될 테고, 그걸 꿋꿋이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 나를 위해 쓴다.


사랑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 이별에 힘든 마음은 오래된 기침처럼 질기다.


그럴땐 글을 읽고, 쓴다. 무엇가 쏟아내고 정리하면 낱낱히 분해해서 직시하면


사실 고래가 아니라, 잉어만큼의 크기였던 두려움의 실체와 마주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좋아하는 시집을 꺼내 읽다가, 가슴에 쿡 박히는 시 구절을 만났다.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눈으로 훑고, 입으로 발음해봤다.


.


괜찮다, 하는 그런 울림이 들리는 듯도 했다.






혼자 우는 눈동자가 없도록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빚어졌다.

- 이현호, '묵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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