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도 습관일까
2010년은 내가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아직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고, 나는 2009년 연말에 첫 출시된 아이폰(3gs)을 들고 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고등학교 때까지 변변치 못한 구형 슬라이드 폰을 쓰던 내게 친 형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사준 휴대폰이었다. 대학가서 기죽지 말라는 배려였는데 덕분에 기죽지 않고 첫 학기를 보냈다.
당시 선배들은 내 아이폰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한 번씩 만져보고 싶어 했고, 그때 내가 자랑한 기능들은 지도를 양손가락으로 펼치며 확대하는 것이나 나침반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폰을 좌우로 뱅글뱅글 돌릴 때마다 그에 맞게 돌아가는 나침반과, 3G의 하염없는 속도로 확대되는 지도를 보면서도 주변에서의 경탄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튀어나왔다. 카카오톡이 몇 달 후에 나왔을 때, ‘야 아이폰 쓰면 문자가 공짜라며?!’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은 기억이 있다. 예쁜 여선배가 ‘야 너도 아이폰이야? 카카오톡 친구할래?’ 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꽤 힙했다.
아이폰이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몇 달 후에는 별 대단한 자랑도 아니게 되었다. 그 즈음 나는 하루 종일 그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러다가 게임하나를 깔게 됐다. ‘Tap Farm’ 이라는 게임이었다. 그 게임은 지금도 양산되는 농장게임의 거의 시초였다. 밭에 씨를 뿌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열매들이 열리는데 그걸 손가락으로 일일이 눌러서 수확하는 게임이었다. 그냥 몇 시간에 한 번씩 씨를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고 그 돈으로 더 비싼 열매들을 사고 다시 뿌리는 아주 무의미한 행동이었는데도 썩 재미있었다.
열매들마다 수확시간이 달라서, 나는 최소한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농장을 관리해주어야 했는데, 그걸 너무 오래 방치하면 시들어버려서 씨앗 값만 날리기 때문이었다. 초창기에는 하루 내 잊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가 몇 번의 실패를 맛보고 난 다음에는 거의 삼십분에 한 번, 아니, 거의 십오 분에 한 번씩은 습관처럼 어플을 켜서 농장을 확인했다. 이게 습관이 되니까 나중에는 씨앗을 뿌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나도 모르게 어플을 켜고, 농장을 한번 훑어보고 그렇게 되었다.
수확하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있는 지 뻔히 알면서도 휴대폰 잠금만 해제했다하면 손버릇처럼 그 어플을 켜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게임을 반 년 이상 하면서, 내가 했던 일은 그저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그 가상의 작물들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거나, 자기 직전에도 농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런 중독증세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날 그 게임을 과감히 지워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지울까 말까를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는데, 참 우습게도 쉽지가 않았다. 그냥 몇 메가바이트 짜리 게임일 뿐이건만, 그 어플에 내 몇 개월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나중에 또 하고 싶어지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되었다. 지우지는 말고, 하지만 말아볼까. 그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새벽에도 잠을 깨가며 열성으로 넓혔던 내 농장의 건물들과, 일목요연 가지런하게 정리된 논 밭 들을 훑어보니 파괴하면 무슨 죄를 짓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지웠는데, 그 직후부터 나는 몇 주 간이나 핸드폰을 열 때마다 허전해했다. 단순히 게임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 일련의 행동들이 나에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임 어플이 있어야할 홈 화면에 게임이 없으니 손가락은 허공을 찍기도 하고, 때론 방황하면서 한참이나 어색해했다.
나는 2010년의 그 농장과 결별한 뒤로, 스마트폰에 게임을 깔지 않는다. 설령 궁금해서 깔았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미련이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낱 게임도 몇 개월씩 매일 하다보면 그 어색함을 참아낼 길이 없는데, 오래 만난 연인과 헤어지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었을까. 이별 후에 일 년 동안 어색해하고 허전해했던 건 참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지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오래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랑이 아니라도.
사랑이 아니라도 익숙한 것을 떠나보내면 힘들다. 나는 벌써 한참이나 지난 그 농장과의 이별과 허전함을 떠올리면서 그렇다면 사랑과 이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외로움과, 그리움, 아쉬움, 허전함. 그런 것들이 나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는 것. 중력이나, 빛의 속도처럼 이별의 허전함과 외로움은 아무런 이유를 갖다 붙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견고한 진리라는 것이 나에게는 나름대로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한창 연애하던 여자친구에게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자주 만나서 맛있는 것만 먹고, 좋은 영화를 보고, 재미난 곳을 구경하면 친해질 텐데 가뜩이나 사랑하는 사람하고 이렇게 매일 만나서 즐거운 일을 하다니.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어.”
연인과는 무슨 과제를 같이 할 일도 없고,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난처한 부탁을 할 일도, 기한 내에 처리해야할 문제도 없으니 그저 만나서 즐거운 데이트만 반복하면 된다는 것이 가끔은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오래 보낸 누군가와, 매일 같이 연락하던 누군가와 헤어졌으니 힘들 수밖에. 가끔씩 허전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다.
내 마음이라는 공간에, 매일 같이 열성으로 클릭하던 그 대상을 하루아침에 지워버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무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허전해하는 건 그녀라는 대상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때의 그 농장게임처럼. 연락이라든가 만남같은, 수없이 반복되던 일종의 습관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와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한낱 조잡한 농장게임과 비교하다니. 나는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방향없이 미안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