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덕준 Mar 13. 2017

난초

서덕준




엄마의 창백한 유리알 너머로 베란다는 턱뼈를 삐걱대며 소리를 씹고 있다. 입을 다 다물지 못한 유리창 틈으로 바람이 비집는다. 그 바람에 난초는 잎을 사방 칭얼대고 엄마는 젖은 수건으로 난초의 팔다리를 닦아주며 자장가를 부른다. 내 밑으로 있던 동생에게 관을 짜 주어야 했던 이십 수 년 전의 엄마는 이렇게 난초를 기르고 있다. 어느 날 난초의 가슴께로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날이 있었다. 엄마는 등을 굽히고 무덤처럼 울었다. 엄마의 두 눈에는 이십 수 년을 복용한 두통약이 후둑 떨어졌다. 얼핏 난초의 꽃봉오리에서 어린 사내아이의 얼굴이 비치다 사라지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이십 수 년 만에 관을 열고 난초를 낳았다. 엄마의 처방전에는 잎이 저물어 갔다.


엄마가 처음으로 거실에서 잠을 청한 날이 있었다. 엄마의 배 위로 가만히 난초의 그림자가 태동胎動처럼 넘실대던 날이 있었다.




/ 서덕준, 난초
/ 사진작가 김나영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