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준
낮은 사선으로 해가 길어지는 날이면
그림자 길게 강변을 머무는 늦은 계절에
살갗에는 내게 해로운 운명들이 담을 오르고
나는 낙엽의 뒷면처럼 다 저물어간다
겨울에는 있던 것이 봄에는 없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불안의 답이 내 이름은 아니길 기도하는 저녁
죽음에 불을 지른다고 죽음이 화상 입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 나는 해로운 운명에 불을 지르려다 실수로 스스로를 태웠을까
그래서 이번 생을 내내 불더미 속을 걸었나
해는 낮은 사선으로 길어지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한 번도 당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림자 길게 강변을 머무는 늦은 계절에 나는 다 저물어가고
/ 서덕준, 죽음에 불을 지른다고 죽음이 화상 입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