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덕준 Jan 26. 2024

죽음에 불을 지른다고 죽음이 화상 입는 것은 아니다

서덕준




낮은 사선으로 해가 길어지는 날이면

그림자 길게 강변을 머무는 늦은 계절에

살갗에는 내게 해로운 운명들이 담을 오르고

나는 낙엽의 뒷면처럼 다 저물어간다


겨울에는 있던 것이 봄에는 없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불안의 답이 내 이름은 아니길 기도하는 저녁

죽음에 불을 지른다고 죽음이 화상 입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 나는 해로운 운명에 불을 지르려다 실수로 스스로를 태웠을까

그래서 이번 생을 내내 불더미 속을 걸었나


해는 낮은 사선으로 길어지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한 번도 당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림자 길게 강변을 머무는 늦은 계절에 나는 다 저물어가고




/ 서덕준, 죽음에 불을 지른다고 죽음이 화상 입는 것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추락하러 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