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준
서덕준 / 감기는 외롭습니다
길을 잃은 겨울이 잠시 늦봄에 잘못 정차합니다. 때아닌 감기가 찾아왔습니다. 눈을 감싸는 뼈의 지붕에 몰아닥치는 통증의 지진은 기와가 다 무너져 내리듯 나를 함락시킵니다. 기침 소리는 한 곡 반복,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불규칙한 이 노래를 멈추고 싶지만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어두운 방에는 기침에 번쩍거리는 시야만이 고장 난 가로등처럼 깜박거리고, 두통은 몰려든 하루살이 떼가 되어 웅성거리기 바쁩니다. 커져가는 기침의 진폭, 들썩이는 회색 커튼 사이로 보이는 뒤집어진 하늘의 천장, 횡파의 모양대로 울렁이는 길거리 사람들. 감기는 들뜬 마음을 주춤하게 만듭니다. 허물어진 목에서 쇠맛이 나는 저녁,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반쯤 기울어져 삐끗거리던 회전무대를 생각합니다. 녹슨 손잡이에 얼굴을 묻었을 때 났던 외로움의 냄새, 감기는 외롭습니다. 길 잃은 겨울이 부러 정차한 이유는 외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침은 그 진폭을 더해가고, 더 크게 휘청이며 삐끗거리는 회전무대. 마음이 펄펄 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