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아주 얕게 신경 쓰였던 혀 아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
당황스러웠다. ‘이부프로펜을 먹으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통증만 잡혔을 뿐 괜찮아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런던까지 와서 사소한 질병이 아닌 큰 병에 걸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약국으로 향했다. 간단한 질병이라면 약국에서도 처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사는 자신이 처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며 거절했다.
욕이 나왔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 텐데...’
무엇보다 나는 NHS(영국의 의료보험)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GP 예약도 NHS 번호가 있어야 가능했다. 예약제라 당장 GP를 만날 방법도 없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간호사였던 엄마에게 급하게 연락했다. 다행히 바로 답장이 왔다.
엄마는 증상을 듣고, 붉으면 염증일 수 있으니 빨리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근처 병원에 신규 환자로 등록을 신청하고, 증상과 사진, 진행 경과를 함께 첨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리셉션 직원은 나를 신규 등록 환자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전해 들었는 모양인지 등록 환자는 아니지만 의사와 통화 상담을 연결시켜주었다.
의사는 "당장 U&E 응급실로 가서 전문의를 만나보라"며 "암일 가능성도 있으니 서두르라"라고 말했다.
겁이 났다. 그래도 일을 마무리하고, 집 정리를 한 뒤 회사에 병원에 간다고 연락을 남겼다.
한 시간 거리의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며 챗지피티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영어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때, 마우스피스를 세척하지 않고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트레이에 검은 찌꺼기가 있었던 게 떠올라 세균 감염이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병원 응급실을 찾는 길은 헷갈렸고, 목이 바짝 말랐다.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남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차분히 접수했다. NHS 등록이 안 되어 있어도 응급실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대기실은 한산했다. 팻말에 적힌 2시간 대기 안내가 내려갔다.
통증은 있었지만 암이라면 어차피 급하게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외상 환자들이 먼저 들어갔고, 조금 더 기다린 뒤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혀 아래 부은 부위를 보여주었다.
의사는 치과 진료가 필요하다며 잇몸 염증 같다고 했다.
원인을 물어, 나는 마우스피스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곰팡이로 인한 바이러스성 염증으로 보인다며 약 처방과 시중에서 구입 가능한 제품도 추천해 줬다.
암이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약국에서는 처방받은 약이 단종되어 제조사에서도 공급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약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욕이 나왔다. "단종된 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라니!"
추천 제품 또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부프로펜으로 하루를 버텼다.
오늘은 병원 약국으로 다시 가 약을 꼭 구해올 생각이다. 없으면 응급실로 가서 재처방을 요청할 것이다.
나는 처음 겪는 증상에 유서까지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죽음을 떠올릴 줄 몰랐다.
‘지금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살아왔고, 실수와 잘못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나조차 몰랐던 내 마음을 새롭게 알아버린, 이상하게 급박했지만 흥미로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