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마라톤을 앞두고 있다.
하프 마라톤을 앞두고 있다.
20대 중반의 나는 10km 마라톤을 겨우 완주했었다.
지금은 34살, 곧 35살이다.
나이에 노화의 의미를 두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전의 나보다 더 나은 성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다 보니
시간과 함께 나이도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못한다고.
나는 그 말에 일부는 긍정하고, 일부는 부정한다.
‘나이’라기보단 ‘신체의 내구성’은 점점 닳아간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20대의 나보다 못할 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더 못하게 된다는 말을 맹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겐, 시간이 아군이다.
나를 더 잘하게 하고, 더 깊어지게 하고,
더 완성도 있게 나아가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건 그냥 믿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경험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20대에 하지 못했던 운동을
지금의 나는 더 잘한다.
더 빠르게 습득하고, 더 정확하게 동작을 수행한다.
물론 기력이나 신체 내구성은 20대가 나았을지 모르지만,
근력량과 이해도는 지금의 내가 더 높다.
나이는 그냥,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숫자일 뿐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애씀’이 그 나이를 다르게 만든다.
그 나이는,
그저 시간만 먹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삶을 단단히 살아낸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나이 들어서 안돼”라는 말이
비겁한 변명처럼 들린다.
“예전엔 이랬는데…”라는 말도
지금과 비교해봤자 허공에 외치는 헛소리일 뿐이다.
지난 삶이 혼란과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가장 좋다.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행복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20대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 나다운 삶의 정점이다.
나이는 그냥 시간의 숫자일 뿐,
살아낸 시간의 밀도는 내가 만든다.
나는 다음 주에 하프 마라톤을 뛴다.
사실 3주 전, 이미 같은 거리를 달렸다.
그날은 컨디션이 좋아서 뛰어볼까 하다
준비도 없이 그냥 해냈다.
쭉 뛰지는 못하고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결국 걷게 되었지만
그때의 완주 경험은 내 인생의 첫 성취였다.
그 경험은 나에게 말해줬다.
“나이 때문에 못한다”는 말은
이 삶에서 정말 아무 의미 없다.
3주가 지난 지금,
나는 그때보다 특별히 더 잘 뛰지 못한다.
몸무게가 더 줄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컨디션에 맞게 계속 달릴 뿐이다.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며, 오늘도 내 페이스대로 뛸 뿐이다.
내 나이, 34살. 곧 35, 36, 40살이 된다면,
지금의 이 하프 마라톤은
그때의 내가 가볍게 해낼 수 있는 ‘목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확신한다.
나는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고,
그날의 나를 위해 또 다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