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 꿈은 매번 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허상’이라 치부하거나 애써 외면해왔다. 나는 그런 자질이 없다고, 세상이 두려워서 못하겠다고, 부정하며 덮어두었다.
요즘,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잊을 만하면 불쑥 찾아오는 마음. 이번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내 꿈은 연예인, 아니 정확히는 연기하는 ‘배우’다.
해외에서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는다. 그중 하나는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나를 스스로 제지해왔다는 점이다. 17살에도, 24살에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도전조차 하지 못한 채 그렇게 34살이 되었다.
지금 이 꿈을 마주하지 않으면, 40대가 되었을 때도 나는 또 미련과 후회로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내 생각대로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느끼겠지. 그런데 문득, 40대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똑같이 생각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늦지 않았다. 10대도, 20대도, 지금도 — 그때의 나도 결코 나이가 많았던 게 아니었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나도 그 틀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변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바뀌지 않은 문제들도 남아있다.
세상의 변화는 나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조금만 더 일찍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나를 믿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툭 한 번 던져봐도 되는 나이였다. 지금은 더 노련해야 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싶다. 아니, 해야겠다. 지금 연기를 해보고 싶다. 배우라는 일은 내 삶을 가장 깊이 있게, 그리고 가장 쓰임 있게 쓸 수 있는 업처럼 느껴진다. 내가 살아온 삶의 많은 부분이 배우라는 존재의 고찰과도 이어져 있었다. 직장 생활은 내게 그런 감각을 주지 못했다. 배우라는 업은, 삶을 나누고 통찰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삶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보장이 없고, 나는 한국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의 틀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배우로서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표현하는 삶이 멋지다고 느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 취미, 삶의 태도 모두가 배우로서의 자질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실력은 형편없다. 연기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해보면 된다. 키워나가면 된다. 시작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건 이제 충분히 경험했다. 어릴 적의 나로 족하다.
실력은 없지만, 해내면 된다.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
설령 오랫동안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또 다른 삶의 터전, 뉴질랜드에서 어느 나이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이 있음을 배웠으니까.
내 삶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5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나는 더 즐겁고, 더 단단하게, 나답게 살아가고 있길 바란다.
그래서, 도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