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발을 그만두었다

더 나아지기보다, 나로 있는 삶을 선택했다

by 도하

나에게 자기개발은 불안을 안정감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아니다.
그저 서서히, 천천히 삶이 정제되어갔다.


처음엔 단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라는 걸, 사실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땐 왜 그렇게 책을 읽고, 일찍 일어나고, 자기 확언과 명상을 습관처럼 했을까?
남들이 "이렇게 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말하면, 나도 그렇게 될까 싶어 홀린 듯 따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따라 해도 마음은 점점 침잠해 갔다.
말과 생각이 현실을 바꾼다지만,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나아가려고 애쓸수록, 더 깊이 가라앉았다.
나는 결국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낙인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력감 속에서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붙잡고 있던 관계들도, 회사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갔다.
결국엔 나 혼자만 남았다.


그 외로움보다 더 컸던 건, 익숙했던 인연이 끝나버렸다는 당혹감이었다.
내 하루를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만 남았다.


슬픔을 마주하며, 떠오르는 기억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자
그제야 비로소 '진짜 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명상, 미라클 모닝보다
이 맨바닥의 상황이 나를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게 만들었다.


둥둥 떠다니던 삶에서, 내 발로 걸어가는 삶으로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동안은 썩어가는 마음 위에 무언가를 계속 쌓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단 하나의 균열이 그 모든 걸 무너뜨렸다.
모든 게 휩쓸려 가버린 후에야, 나는 나의 땅이 썩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 후로는 하나하나 정리하며,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삶이 나를 살리기 위해 이런 허무함과 우울감을 줬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다시 바라보기까지는 1년쯤 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잃었던 나를 마주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자기개발을 멈춘 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걸.


운동도, 독서도 여전히 좋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하고 싶을 때’ 한다.
그게 나를 위한 진짜 자기개발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음 더 정확히는 "자기계발"이 맞겠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러닝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는 하프 마라톤도 완주했다.


독서는 아직 예전만큼 손에 잡히지 않지만, 인문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에 다시 흥미가 생기고 있다.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연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는 처음이라 막막하다.
하지만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배우들의 연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면 저 장면 또는 역할을 어떻게 표현할까?
왜 저 배우는 저런 호흡과 표정을 썼을까?
분석하고 따라 하게 된다.


이해하는 것과 표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전달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다.


34살. 사회적으로는 많다고 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하고 싶다.
마주하고 싶다.
배우라는 업으로 나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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