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그 말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속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고집을 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이해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고착은 다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원래의 나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지?”
어릴 적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르다.
물론, 성향이라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다.
그런데도 ‘나는 원래 이래’라고 스스로를 고정시키는 건,
자기 성찰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가령, 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모임에 와서
‘나는 원래 책을 안 읽는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묻고 싶다.
“그럼 왜 이 모임에 왔을까?”
변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렇다면 ‘책을 잘 못 읽지만, 익숙해지고 싶어요’라는 말이
훨씬 건강하고 유연한 자세 아닐까?
나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이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이해받아야 할 조건’으로 내세우고,
공동체의 목적과 흐름을 무시한 채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건,
그저 아집일 뿐이다.
나는 오래전,
자신의 고집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자신의 부족함조차 뻔뻔하게 드러내던 사람을 떠났다.
그 사람을 처음으로 ‘기피하고 싶다’고 느꼈고,
처음으로 ‘사람 자체가 싫다’는 감정을 겪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의 나 자신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장하고,
성숙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부족함을 보듬고,
타인에게도 따뜻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