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백수가 된다..

백수만 4번째 ^^

by 도하

7월이 시작되면 또다시 나는 백수가 된다.

벌써 백수만 4번째다.

뉴질랜드에서 한번, 한국에서 두번, 백수인채로 영국에 와서 영국에서 다시 한번.

백수만 4번째가 되어가니 슬슬 백수가 익숙해진다.

맨 처음에는 마냥 두렵고 내가 과연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했는데 15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아주 어엿한 성인으로써 잘 살아나아가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직장만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백수 또한 아르바이트하는 일상도 한 사회인으로서 잘 해내가고 있는 것인데 너무나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었다.


막상 직장 생활도 해보고 다양한 형태의 삶들이 있음을 알게 되니 직장은 그저 아주 일반적이지만 가장 잔혹하고 좁은 길의 사회였다.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회에는 직장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미술가, 연출가, 음악가, 방송인, 바리스타, 자영업자,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사회에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좁은 시야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나의 길을 찾기를 외면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선택했다. 너무 일찍이 사회에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갑자기 학생이 아니라 어른이라고 하니 그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 생활비용부터가 달리지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 겁을 내던 와중에 영어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던 대학교를 심리학 전공으로 들어가서 결국엔 무사히 졸업을 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대학교는 기본이 3년제인데, 나는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전문대학교를 2년을 다녔었다. 그리고 1년을 버거킹에서 일하며 시간을 가졌고 이때의 나는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었다. 그림 실력도 창의성도 깡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내 나이대의 친구들 따라 학생이고 싶었다. 그리고 정규대학을 나오지 않은 채 살아가기엔 미래의 내가 이것 때문에 훗날 자격지심을 가질 것 같았다. 워낙에 내성적이고 눈치를 보는 성격 탓에 나에 대한 믿음도 부족해서 내가 가진 부족한 점들에 대해 객관화가 되어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알고서 그때의 부족했던 자신에 안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하고 심리학에 도전한 것이 뿌듯하다. 이 결정으로 인해 지금의 나는 학력에 의한 자격지심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교를 나왔다는 것 자체로 사회적인 인정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한국의 문화권에서 그나마 잘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직장생활을 5년 뒤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직장인 기준으로 5년이나 늦게 취직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나로선 별로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시작할 당시에는 조급했었다. 한편으로 평생을 일해야 하는 거 늦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며 마음을 잡았지만, 혹시나 내가 직장인으로서 시작조차 못할까 봐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 불안함을 마주하고 이력서를 수정하고 인터뷰를 보면 볼수록 무례하고 형편없던 나의 이력서와 인터뷰 실력은 갈고 닦여졌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형편없는 이력서와 인터뷰실력과 실질적인 것을 보지 못했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봐야 했던 것을 보지 못했달까. 사전 인터뷰로 기회가 왔음에도 제대로 알지 못해 기회를 날렸고, 면접 때는 보여주지 말아야 할 모습들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기회들을 잃었다.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상황으로 나는 들어가고 말았다. 바로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나는 졸업을 했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취직도 하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홀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인이라면 마땅히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불아하고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다해야 하는 현실에 막막했고 우울했으며 무기력했다.

졸업도 엄마의 지인을 통해 인턴십을 찾게 되어 실습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마지막 졸업 논문이 실슬을 통해 쓰는 논문을 내는 것이어서 현장실습 시간을 무조건적으로 채워야 했다.

그리고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는데 이력서를 돌려도 구할 수 없자, 지인을 통해 한인 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한인식당에서만큼은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일하게 되어 무척이나 자존심이 구겨졌었다. 뉴질랜드랜의 한인 사회에서만 자라왔기 때문일까 현지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일반 마트의 캐셔일도 구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될까 두려웠었다.


그 후 또 지인을 통해 경찰서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의 친구가 다닌 직장에서 자리가 생겨 지원해 보라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없었던 인터뷰 자리가 생겼고 인터뷰를 본 후 바로 취직에 됐다.


모든 어려움 속에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결코 나는 혼자서 이룬 것은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어 지금의 나로서 클 수 있었다. 그래서 이후 은행으로 이직을 했어도 나는 은행원이라는 것에 우쭐하거나 자만하지 않았다. 직장이 주는 타이틀은 아무것도 아니라 내가 하기 나름이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외국계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어도 나는 나였다. 달라진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을 뿐. 그 자리를 너무 나답게 자유롭게 즐겼기 때문일까, 나는 계약만료가 되었다. 보통 연장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 회사에 맞지 않아 계약이 끝났다. 그렇게 한국에서 처음으로 또 다시 무직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한창 꿈꾸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충격은 받았지만 덤덤히 받아들였다. 마침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자 말겠다란 호기로운 꿈에 심취해 있었다. 이렇게 열정이 넘치는 목표는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너무 달랐다.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내에서 일했던 내가 처음부터 다 나에게 맞는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라는 것도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아니 무언가라도 쓰고 찍었지만 내 안의 확신과 믿음이 부족했다.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다행히 백수수당을 받으며 6개월은 걱정 없이 이것저것 시도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관뒀지만 빵집에서도 일해보고 헬스장에서 수습트레이너로 몇달간 운동을 배우며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데이터 분석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컴퓨터 과정을 국가지원금으로 듣게 되었는데 너무나 어려웠다. 이때의 나는 나에게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논리적 사고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도 실패 인스타그램도 실패 모든 것이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스마트 스토어도 시작했는데, 그때 사고 싶은 문구류 하나를 수입해 와서 팔았는데 간혹 가다 한 달에 커피값 한두 잔 정도는 벌게 해 주었다. 이때 개인사업자 신고도 했었는데 굳이 할 필요도 없이 대표란 직책에 홀려 신고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나도 나인데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이라도 되고 싶은 성공하고자 하는 인정욕구에 허덕이고 있었다. 허영심이 가득했고 부족함과 없는 결핍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이런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잘 다듬어왔던 물욕이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자 터진 것이다. 그때 당시의 나는 이런 내가 너무 허영심에 가득한 것 같았는데, 집안 내력이 있었다. 관심분야가 조금 다를 뿐 언니도 쇼핑을 좋아하고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전자기기를 구매하셔서 써보시는 걸 좋아하셨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어릴 적부터 집에 컴퓨터가 있어 메일주소도 만들고 플레이보이 닌텐도 디디알 같은 초창기의 게임기들을 아버지가 사주셔서 갖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또 다시 백수가 되지만, 나는 조금은 초조하지만 예전만큼 불안하거나 두렵지는 않게 되었다.

올해에 들어오면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나의 내면은 안정적이게 차분해졌고 나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스스로에게 주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믿게 되었다. 이건 이전과는 다른 차이점이다. 이전의 나는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애써서 성장하고 도전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기에 즐겁게 마주하며 나아갈 거라 믿으며 응원하고 마주할 도전들을 잘 해낼 거라 격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를 믿는다. 나는 결국 나답게 자유롭게 건강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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