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다시 보진 못하지만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은 그리움으로 남는 듯하다.

by 도하

어릴 적 왕래가 잦았던 이모부가 쓰러지셨다.
사촌 동생은 하늘나라로 건지 어느덧 10주년 되었다.
둘 다 뇌질환에 의해 쓰러졌다..
남은 사촌동생들이 신경 쓰인다. 이미 서른 중반의 성인이지만 10년 전에 겪었던 아픔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사촌동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는데 가족이라면 오죽할까.

서핑도 함께 한 추억이 있어 좋아했지만 선뜻 다시 하기가 어려웠다. 사촌동생과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아버렸기 때문에. 그러다 오랜 시간 지난 작년에 사촌언니와 함께 서핑을 하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았다. 왠지 이때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함께니까. 나에게 서핑은 애틋한 활동으로 남았다.

한국에 간지 오래지 않아 코로나 중에 친할머니 돌아가시고 잡아드린 손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에 오기 전 오랜 시간 침상에 누워게셨던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할머니 손과 할아버지 손은 뻣뻣했다. 비슷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과 이미 돌아가신 손의 차이를 못 느꼈다. 생기의 부재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두 분을 원망으로 사랑으로도 바라보지 않아 덤덤하게 느껴진 걸까.

조부모님과의 기억은 생각보다 없다. 추억도 기억도 남는 게 없었다. 어릴 적 왕래가 없어서. 그리고 만나 뵈어도 원망이 앞었어서. 하지만 할머니는 만나 뵐 때마다 입은 거칠으셨지만 사랑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봐주셨다. 어릴 적엔 거친 할머니가 싫었다. 나를 사랑하시든 말든 그 거친 표현들에 나는 질겁했다. 커서는 싫은 마음은 크지만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그러려니 바라보았다.


이젠 아무런 조건 없이 그렇게 봐주는 존재는 없다. 아쉽진 않았다. 애틋한 마음보단 어릴 적 원망과 어른으로썬 그저 그러려니 무던하게 지내왔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두 분의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뉴질랜드에 계시는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 내가 대신해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나는 그러려니 해도 아버지에겐 부모님이니까.


조금은 마음이 착잡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조부모님과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더 좋아질 수 있게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그리고 지금도 나는 마음이 얄팍한 만큼만 했을 텐데 이런 생각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건 두 분이 안 계셔서 그런 거겠지.


나에겐 관계가 어렵다. 친엄마와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마주해야겠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해줄 수 있는 말이 적절한 게 없음에 안타깝다. 옆에 함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 더 그러한 거 같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장례라는 시간을 갖는 이유를 이젠 조금은 알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마지막 힘울 내어서 인사하는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알 거 같다.

어떠한 관계였고 어떠한 삶을 살았든 마무리를 짓기 위함이란걸. 관계에 시작과 끝맺음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순리와 같이 느껴졌다.


부디 오늘 하루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의 마음의 총량을 채워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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