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고사성어였다.)
이 말이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혀 있었다.
나도 나의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에는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이순신, 세종대왕, 헬렌 켈러, 아브라함 링컨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자들이 요즘의 위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이면서도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돈이 많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치와 비전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없어도 비전과 가치를 따라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은 대개 고되고 드러나기 어렵다. 그들의 삶은 대개 죽은 후에야 조명되거나, 그대로 묻히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 그래도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철없던, 스포일 된 아이였다. 그래서 ‘없는 것’에 대한 결핍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삶은 그러한 결핍과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자연스레 나의 습성은 다듬어졌고,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감사하게 여긴다.
어릴 적 나는 사람이 된 이상,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름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스스로 더 생각하고,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다혈질이던 나의 성격은 차차 누그러졌고, 그것을 나 스스로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변화해 왔다. 성숙은 나이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점차 깨달아갔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이름을 남기고 싶은가.
되고 싶은 것을 꿈꾸던 20대 초반을 지나,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써서 나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큰 한 걸음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나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이 따뜻하고 즐겁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직장에서는 함께 즐겁게 일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사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존중과 배려를 담아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했다.
물론 시선은 편협했고, 다혈질도 남아있었고, 문화적 차이로 실수도 저질렀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려 했고, 나 또한 진정성 있게 대했다. 그렇게 내 삶에서 모난 이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어쩌면 그들 또한 내 곁에서 불편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나에 대한 평가는 항상 좋지만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신뢰의 눈빛을 주었다.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평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양날의 칼이기에, 필요하다면 활용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결국, 나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 흔적을 곳곳에 남겨서,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위로를 받고, 응원을 받고, 격려를 받고,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