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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창 Jul 02. 2022

고통의 원인

유무력의 법칙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고통을 없애고 싶어합니다.


불교 사상의 핵심을 담은 < 반야심경 >의 주된 내용은 고통을 없애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불교라는 거대한 종교의 핵심 주제가 '고통을 없애는 것'인만큼

고통을 없애는 것은 우리 인간의 큰 관심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무력의 법칙을 통해

실제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고,

이 원리를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무'라는 생각과 '유'를 원하는 마음은 동시에 존재한다.


친구의 집에 갔습니다.

친구에게 '나 목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나에게 물을 줍니다.

나는 물을 마셨고, 목마르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는 아주 흔히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무'라고 생각할 때(생각이 들 때), '유'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하고, 그 '유'를 원하는 마음에 의해 '유'가 현실화됩니다.

여기에서 '무'라는 생각과 '유'를 원하는 마음은 반드시 세트로 존재합니다.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목이 마르다.'라는 현재상태만 말했을 뿐인데,

친구는 나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친구가 나의 '목이 마르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목이 마르다.('무'라는 생각) >라는 생각과

< 목이 마르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유'를 원하는 마음) >은 세트로만 존재할 수 있고,

'목이 마르다.'라는 생각을 통해 친구는 '목이 마르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을 느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유무력의 법칙을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무'라는 생각과 '유'를 원하는 마음이 세트로 존재함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친구에게 '나 목말라.'라고 말했어도

친구가 '어쩌라고.'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가 나의 '목마르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을 느낀 것은 맞습니다.

단지 내 원하는 마음을 외면했을 뿐입니다.

물론 친구라면 '어쩌라고.'라고 말한 이후에 물을 갔다 줄 것입니다.



    2. 두 가지의 원하는 마음이 충돌할 때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진다.


일을 끝내고 방에 갔더니 방이 더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방이 더럽다.'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위의 목마름에 관한 예시와 마찬가지로

'방이 더럽지 않게 되기를(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방의 상태가 내가 원하는 상태보다 상대적으로 더럽기 때문에 더럽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깨끗한 상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방이 더럽다고 생각할 때 '방이 더럽지 않은(깨끗한)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하고

그 마음에 의해 방이 더럽지 않게(깨끗하게) 됩니다.


유무력의 법칙은 '~라고 생각할 때 ~마음이 발생하고'라고 표현하지만,

반대로, 그 마음이 존재하고 있을 때 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이 나타나면서 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원하는 마음이 이미 존재하기에 그 생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생각과 마음은 세트로 존재합니다.


'방이 더럽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도 같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내 방을 보고 방이 더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방을 청소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때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방이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1)'을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방을 청소하고 싶지 않은 마음(2)'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때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1)'과 '방을 청소하고 싶지 않은 마음(2)'이 충돌합니다.

방이 깨끗해지려면 청소를 해야 하는데, (1)의 마음에 맞추어서 청소를 하게 되면

(2)의 청소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므로 (1)과 (2)는 충돌하는 것입니다.

(2)의 마음이 더 크면 (1)의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1)의 마음이 더 크면 (2)의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원하는 마음이 서로 충돌할 때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한 가지의 원하는 마음이 이루어질 때 또 다른 원하는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는 마음 상태라면

고통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원하는 마음끼리의 충돌에 의해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 느껴질 때 고민을 해서 원하는 마음을 일치시킵니다.

원하는 마음이 충돌하지 않아야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마음을 일치시키는 방법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3. 충돌하는 원하는 마음을 일치시키는 방법 _ 1


(1)의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과

(2)의 청소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때

한 쪽의 원하는 마음을 조정하여 충돌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그 첫 번째 방법은 '이 정도면 더럽지 않다.'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방이 더럽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청소를 하기 싫은 마음이 느껴져서 괴로움이 느껴졌고,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방이 이 정도면 그렇게 더러운 건 아냐. 무난해.'라고 생각을 바꿉니다.

그럼으로써 (1)의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사라지도록 합니다.


'더럽다'라는 생각과 '더럽지 않게(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세트로만 존재하므로

생각이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생각도 사라집니다.

'더럽지 않게(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도록

'더럽다.'라는 생각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방이 더러운 것은 아니므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됩니다.

(1)의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1)의 마음과 (2)의 마음이 충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방 청소를 하지 않고 (2)의 마음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1)의 원하는 마음을 발생시키지 않는 생각을 함으로써

(2)의 원하는 마음과 충돌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4. 충돌하는 원하는 마음을 일치시키는 방법 _ 2


'이 정도면 방이 더럽지 않다.'라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이 더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1)의 원하는 마음과 (2)의 원하는 마음이 계속 충돌하여 계속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이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 고민을 한 결과

비용을 지불하고 방 청소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1)의 '방이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마음'과 (2)의 '내가 청소를 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1)의 원하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제 3의 원하는 마음을 만들어서 (1)의 마음과 (2)의 마음이

충돌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5. 고통이 느껴지는 원인


이와 같이 내가 가진 원하는 마음끼리 서로 충돌할 때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저장되어 있는 원하는 마음과 또 다른 원하는 마음이 충돌하면 고통이 느껴집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기본적인 원리는 내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원하는 마음을 그대로 원하는 것입니다.

내 잠재의식 속에서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을 놔두고 그와 충돌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삶이 괴로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잠재의식 속에서 원하는 것과 반대의 것을 원할 때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6. 신체의 고통


이번에는 신체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마취를 하기 위해 바늘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매우 아픕니다.

주사 바늘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 통증 또한 두 가지의 원하는 마음이 충돌하여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외부의 힘에 의해 침범을 받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3)'과

'주사 바늘(외부의 힘)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마음(4)'이 충돌한 것입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마취를 해야 합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아프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마취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만들어내고

이 마음이 '마취 주사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마음(4)'을 만들어냅니다.

(3)의 마음과 (4)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이 두 가지의 마음이 충돌하여 아픈 것입니다.


마취 주사가 들어올 때 '내 몸이 외부의 힘에 의해 침범을 받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4)'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통증이 느껴집니다.

'내 몸이 외부의 힘에 의해 침범을 받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 강하면 강할수록 통증은 더 심합니다.


그런데 실수로 바늘에 찔려도 아픕니다.

이 경우도 원하는 마음이 충돌하여 아픈 것입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하면

'원하는 마음'이 존재할 때 그 원하는 마음 그대로 현실화됩니다.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현실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실에 나타난 것은 100% 내 원하는 마음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마음 속에서 원하고 있는 것'과 '현실로 나타난 것'이 충돌하면 고통이 느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현실로 나타난 것이 반대라면 고통이 느껴집니다.


냉방병도 이러한 현상입니다.

에어컨의 찬바람을 너무 오래 쐬면 '몸이 너무 차가워지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과 충돌하게 되어 몸이 아프게 됩니다.

이때 에어컨을 꺼주면 아픈 현상이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아주 쎄도 '몸이 찬바람을 쐴 때보다도 더 차가워지기를 원하는 마음'이라면 아프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 속 깊이 원하는 것과 현실이 일치하면 아프지 않게 됩니다.

에어컨을 쐴 때 '아 춥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에어컨을 끄는 것이 좋습니다.

'춥다'라는 생각은 '따뜻해지기를 원하는 마음'과 세트로 존재하고, 이 마음이

찬 바람에 의해 체온이 내려가는 현상과 충돌하여 고통이 느껴지게 됩니다.


제가 모든 질병을 하나하나 관찰해보진 않았지만

모든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현실과 원하는 마음의 충돌 또는 원하는 마음끼리의 충돌에 의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병이 생겼어도 원하는 마음끼리의 충돌이 없으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7. 고통을 줄이는 방법


기본적으로는 '고통이 줄어들기를 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항상 원하는 마음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무'의 가능성의 받아들임이 있을 때만 '유'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합니다.

인생에서 '고통이 느껴질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에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때

고통이 줄어들기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합니다.

그 마음에 의해 고통이 사라져갑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야 해.'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고통이 줄어들기를 원하는 마음'을 억지로 가지려고 한다면

'고통이 줄어들기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고통이 계속 느껴지는 삶이 지속됩니다.


'인생에 고통이 있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통이 줄어들기를 원하는 마음'을 발생시키는 방법입니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은 '유'와 '무'가 항상 동시에 존재합니다.

'고통이 없음' 상태가 있으면 '고통이 있음' 상태도 반드시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완전히 고통이 없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되면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과거에 고통이 느껴졌었고, 그 고통이 느껴질 때 '고통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므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면 심심한 마음이 서서히 듭니다.

삶이 무료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통을 원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고통 자체를 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을 느끼더라도 무엇인가를 성취해나가는 것을 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 외로 고통이 전혀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있지도 않고 고통이 없지도 않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 고통이 있음 >와 < 고통이 없음 >의 중도 상태입니다.

고통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고통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좀 그런 상태입니다.

이와 같이 '유'와 '무'의 중간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인생은 원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직장에 처음 입사하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괴로움을 느끼는 상황들이 많이 생깁니다.

대신 행복한 상황도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직장에 계속 다니다보면

'고통이 있지도 않고 고통이 없지도 않은 상태'로 다가가게 됩니다.


행복하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불행하면 고통이 느껴집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행복'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영원한 행복은 영원히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삶의 중도상태입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야해.'라고 생각하면

큰 고통이 느껴지는 경우와 고통이 전혀 없는 경우가 왔다갔다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인생은 원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해.'라는 생각을 하면

'내 삶에 고통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고통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점점 다가가는 상태가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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