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내일 저녁에 일정 있어요?”
“아니 없어, 왜?”
“나 제주 가면 생일 못 챙겨주니까 내일 저녁에 아빠랑 저 합동 생일파티 해요!”
아빠의 생일은 음력 12월 13일로 올해 양력으론 1월 23일이고, 나의 생일은 양력 1월 24일이다. 1월 한 달 동안 제주에 갈 예정인 나는 아빠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려 합동 생일 파티를 제안했다.
“광어회 시켜 둘께, 너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것만 사와. 호박떡도 아주 맛있게 해 뒀어.”
파티를 하기로 한 당일, 일을 마치고 방어회를 포장하러 학교 근처 시장으로 가는 중에 엄마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광어회 벌써 시켰어?”
“아니 아직, 이제 전화하려고.”
“아니 나 안 그래도 방어회 사러 동부시장 가는 중이거든. 내가 여기서 사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우리 집은 특별한 날엔 자주 회를 먹곤 한다.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니즈와 맛있는 걸 좋아하는 나와 오빠의 니즈가 부합하는 최적의 지점이 회인 까닭일까.
나는 시장에 들러 반찬가게에선 중화칠리새우를, 횟집에선 방어회를, 근처 카페에서 계란빵 3개를 포장해서 집으로 향했다. 케이크도 사가려고 했는데 시장 안의 빵집이 문을 닫아 사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케이크처럼 쌓여있는 호박떡이 눈에 띄었다. 케이크를 안사길 잘했네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떡을 좋아하는 나로 인해 엄마는 몸에 좋은 영양떡들을 곧잘 만드신다. 엄마가 만든 떡은 시중의 떡집에서 맛볼 수 없는 엄마 만의 맛이 있다. 나는 그 맛을 좋아한다. 엄마의 사랑을 좋아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막걸리 사러 가셨어.”
아빠는 좋은 술안주가 있을 때 막걸리를 자주 드신다. 건강을 잘 챙기는 아빠가 술 중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몸에 덜 해롭다고 판단한 술이 막걸리이다. 대부분 2병을 사 오신다. 어차피 자주 드실 거면 박스채 사놓는 건 어떻냐는 나의 제안에 아빠는 그럼 2병 이상 먹을 것 같으니 그러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막걸리 2병'은 아빠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
그렇게 엄마, 아빠, 나 세 사람이 함께하는 두 모녀의 생일파티가 시작됐다.
아빠는 세상에 관심이 많고, 나는 개인의 삶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아빠는 주로 정치, 체제, 세상사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나는 개인의 행복, 자유, 직업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주 관심사는 다르지만 세상과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아빠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담아낸다.
어렸을 때, 아빠는 언제나처럼 거실에서 자주 뉴스를 보셨다. 그런 아빠의 곁에 앉으면 세상사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자주 하셨다. 나는 그 질문에 자주 서운하고 외로웠다. 나에 대한,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이 고팠던 까닭이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인걸 알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 한켠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나의 자아가 꿈틀거렸다.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너 마음이 편안하면 그걸로 됐다.”
내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 채 비교적 최근에 아빠가 다소 수줍게 꺼냈던 문장들이다. 아빠가 이 두 문장을 내게 이야기해 준 이후로부터 꿈틀거렸던 그 마음 한켠의 자아는 종적을 감췄다. 요새도 나는 저 두 문장을 먹이처럼 야금야금 꺼내 먹으며 빛을 낸다.
이제는 아빠의 이야기에 ‘내가 사랑받냐 , 사랑받지 않냐’의 프레임이 아닌 ‘아빠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의 프레임을 씌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빠가 나에 대한,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전혀 안 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특정 프레임은 강한 자극을 주는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나의 기억은 그런 경향성에 의해 해석된 기억일 수도 있다.
“어휴, 그놈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 애기 좀 그만 하소.”
엄마는 대부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가 종종 특정 단어나 문장이 연신 반복되면 고개를 돌리시곤 불쾌해하신다. 아빠의 이야기에 대부분 그러신 걸로 보아 엄마의 관심사는 아마 아빠 쪽 보단 내쪽인 것 같다.
아빠는 완벽한 사회주의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자본주의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지만, 그 자본주의 안에 사회주의적 시스템의 일부를 녹여내어 다수가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복지 시스템이 잘 구현돼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하신다. 그 시스템을 만들고 구현시키는 역할이 정치인에게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떤 정치를 하느냐는 아빠에게 주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너 카드에 50만 원 넣어뒀어. 제주 가서 필요할 때 써. 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랑 방 같이 쓰는 거 불편하면 나와서 다른 방 알아봐. 근데 그쪽에 방이 있으려나?”
“그리고 혹시라도 방에 있는데 누가 문 두드리거나 하면 절대 열어주지 말고. 뉴스 보니까 그렇게 문 열어줘서 별의별 일이 다 있더라.”
한 달 동안 제주를 갈 32살 딸 덕에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제주에 가서 스탭생활을 하면 스탭 2명이 숙소를 같이 사용한다. 자취 3년 차라 공간을 혼자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점도 있지만 친구들과 놀러를 가도 웬만하면 혼자 방을 썼던 터라 다른 사람과 한 공간을 사용한다는 게 나 또한 지레 걱정 되긴 한다.
“에? 쓸 돈은 충분한데. 고마워. 혹시라도 부족하면 쓸게. 근처 단기 임대할만한 방은 이미 플랜 b로 다 알아뒀지.”
“누가 문 두드리면 절대 안 열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나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안심시켜 본다.
“제주는 별의 별사람들이 많이 놀러 가니까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고. 운전할 때도 방심하지 말고 방어운전 해야 한다.”
아빠도 그렇게 걱정에 숟가락을 더하신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 별의별 일들은 사실 별의별 일들이라서 매스컴을 탈 수 있었던 건데. 로또 맞을 확률이 낮다는 건 쉽게 납득하시지만 그 별의별 일들을 마주할 확률도 낮다는 건 쉽게 인정하시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은 이성을 쉽게 흐리게 만드는 걸 알기에 종국엔 부모님의 걱정을 존중하며 “걱정 마”라는 문장으로 답문 한다.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나는 이만 가볼게. 배탈 때 연락할게요.”
저녁 9시쯤 부모님과의 딥톡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