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선물. 편지도있어."
"아 뭐야 이게.."
"지금 읽어봐도 돼."
"아 그래? 나 요즘 눈물이 많아져서 또 읽다가 울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언니는 내가 쓴 편지를 열어보았다.
"엥?!"
"응? 왜?"
편지를 읽다가 언니는 순간 놀란 표정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아 눈물이 쏙 들어갔어, 놀라서."
"뭐에 놀란 건데?"
"아니, 아 이걸 말해도 되나."
"어 말해. 말해도 돼. 무조건 말해."
"하트 펜던트 목걸이 말이야."
12월 17일은 선희 언니의 생일이었다. 언니에게 생일선물과 편지를 전해주러 이른 아침 카페에서 만났다.
선희언니는 대략 5년 전 폴댄스 학원에서 만난 귀한 인연이다. 못났다고 생각해서 자꾸 감추려고 했던 나의 일부 모습들이 내가 가진 특정 프레임에 의해 해석된 착각일 뿐이란 걸 일깨워준 사람이다. 그 덕분에 나는 나 스스로와 화해하고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결이 비슷한 듯 다른 우리는 때론 언니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모습에서 언니를 본다. 그렇게 자꾸 뭘 깨닫고 배우고 그런다. 그래서 귀한 사람이다.
언니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다. 생일을 맞아 짐이 되지 않는 어떤 작고 예쁜 그리고 뜻깊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깊게 고민했고, 고민 끝에 생각난 건 목걸이였다. 언니를 애정하는 나의 마음과 요새 연애를 하느라 빛나는 언니의 모습을 담아 하트 펜던트 목걸이를 골랐다. 그런 나의 의도와 고민의 과정을 편지에 글로 담았다.
" 나 이 목걸이 이번에 사면서 너 것도 같이 샀단 말이야. 너 생일 때 주려고."
언니는 빛나는 은색의 하트 펜던트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서 꺼내 비치며 말했다
"근데 너도 고른 게 하트 펜던트 목걸이라니. 이럴 수가 있나 싶다."
이렇게 우린 자주 그렇듯, 또 통해버렸다.
"근데 나 생일 때 제주에 있을 텐데."
"너 제주 언제 간댔지?"
"1월 초에 출항해서 2월 초에 다시 돌아와"
"그전에 미리 보자"
"그래 그러자"
그렇게 제주에 가기 이틀 전, 언니를 만나러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다. 일부로 오늘은 목걸이를 차고 오지 않았다. 언니가 준 예쁜 선물을 바로 목에 차려고.
요새 들어 우린 웬만하면 식당이 아닌 카페에서 만난다. 한 번은 쌀국수집에서 만났는데 서로 대화하기에 바빠 앞에 놓인 음식들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걸 서로 인지한 뒤부터는 계속 카페에서 만나는 것 같다. 대화를 하느라 먹는 게 뒷전이 되는, 언니는 내게 그런 크기의 사람이다.
"와 이런 숨은 명소가 있었어?"
미리 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걸어오며 언니는 말했다.
"머그 사장님이 차린 카페레. 사장님 냄새나지?"
"어쩐지. 역시"
머그는 카페 앞 건물에 있는 술집 이름이다.
나는 '사장님 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이 표현은 제주에서 처음 탄생한 나의 문장이다. '사장님 냄새가 난다'라는 건 사장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공간에 베여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어떠한 아우라를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공간을 만나면 반갑다. 그리고 제주엔 그런 가게가 많다. 그래서 제주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산은 언제가? 한 2월에 가나?"
언니에게 물었다.
"지금 옮길 집을 이미 알아봐 둬서 빠르면 1월 말에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1월 말?! 그럼 나 돌아오면 언니 없겠네."
"근데 아직 정확하진 않아. 1월 말일 수도 있고 더 늦어질 수 도 있어."
언니는 목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곧 부산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너 스탭생활 하기로 한 곳이 어디랬지?"
"나 k와인펍!."
"0.01%의 가능성이긴 한데 너 제주 가 있을 동안 너 스탭 하는 곳 놀러 갈 수 있으면 갈게."
"아냐, 2월에 제주에서 돌아오면 내가 부산을 갈게. 언니는 이사하고 자리 잡느라 바쁘잖아. 나는 2월에 한가해. 그럼 내가 가는 게 맞지."
"응, 그래도 되고."
"나 한 달간 제주 가서 살고 일하고 하는 거 말이야. 사실 좀 두렵기도 해."
"그렇지 한 달을 타지에서 보내야 하는 거잖아. 당연히 그럴 것 같아."
"응, 해보지도 않은 일을 또 해야 하니까 그것도 다소 두렵고."
나는 잠에 들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나의 뇌를 멈출 수가 없다. 펍에서 손님이 한 주문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되묻는 상상, 음식을 잘 못 서빙하는 상상, 새벽 1시까지 일하고 숙소에 들어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아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하는 상상, 사장님과 다른 스텝들과 성향이 맞지 않아 불편해하는 상상 등 수많은 상상들이 내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상상도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는 상상.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잘 맞아 하루하루가 재밌고 즐거운 상상. 예상치 못한 아주 반가운 어떤 사건을 만나 기뻐하는 상상말이다.
하지만 같은 양의 상상일지 언정 긍정적 장면보다 부정적 장면의 임팩트가 더 큰 까닭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에 더 크게 걸리곤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불행한 상상이든, 행복한 상상이든 그게 상상에 불과하다는 걸 인지하는 자아가 내게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상상과 다르게 펼쳐질 거라는 것을 안다. 또한 그 자아는 내가 어떤 현실에 부닥쳐도 그 순간 내 나름대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는, 크기는 작지만 깊이는 깊은 점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자아 덕분에 두렵다는 이유로 실행을 피하진 않는다.
"제주 가면 이 목걸이 차고, 두렵고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언니가 옆에 있다 생각하고 의지해야겠다."
"응 그렇게 해."
마음이 든든해진 덕인지,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 빨리 부산으로 옮겨가고 싶어. 뭔가 내가 멈춰있는 기분이야."
어두워지는 창밖을 응시하며 언니가 말했다. 언니는 요새 학원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을 밟느라 바쁘다.
의미 있는 활동들로 시간을 채운다기 보다 의미 없는 활동들로 시간을 삭제시키는 기분. 내가 학교에서 공문처리를 하거나 청에서 요구하는 계획서를 써 내려갈 때 느끼는 기분이다. 언니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창밖을 응시하는 언니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니는 목포에서 필라테스 학원을 운영했다. 언니는 사람의 신체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않고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운영하는 필라테스 학원들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그게 언니가 서둘러 센터를 차린 이유이기도 했다. 언니는 다른 사람들이 건강한 신체를 갖는데 기여해 그들이 그 신체를 바탕으로 건강한 마음을 갖고 건강한 삶을 살아내기를 바랐다. 자신이 가진 직업의 무게를 알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본 언니의 삶은 그러했다. 그런 철학을 가진 언니가 나는 늘 자랑스러웠다.
학원은 성행했다. 언니는 학원의 이름을 내건 협회를 만들어 많은 강사를 배출하고 고용했다. 그 과정에서 필라테스에 대한 수요를 체감했고 더 많은 동네에 좋은 필라테스를 공급하는 동시에 강사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싶은 마음에 3호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공간의 크기가 수요의 양을 감당하지 못할 때 공간의 확장을 생각하게 된다. 공간을 확장하면 감당하지 못했던 수요에 대한 공급을 제공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가 커진다는 말이다. 문제는 돈의 크기는 너무나도 쉽게 본질을 가린다. 큰 공간을 유지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한데,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철학을 쫒는 척, 돈을 좇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게 언니가 학원을 정리하게 된 발단이 된 것 같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으면 잠시는 함께 갈 수 있어도 결국은 갈라서게 되어있다. 4년을 고군분투한 언니는 결국 갈라섬을 결정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그와 동시에 부산으로의 이사도 결정했다.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런 ‘사람들’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또한 세상엔 철학을 좇는 사람 보다 돈을 좇는 사람이 수적으로 많기에 철학을 좇는 사람들은 보다 더 같은 쪽을 바라보는 사람이 귀하다. 더군다나 철학을 좇는다 해도 같은 결의 철학을 좇는 사람을 만나는 건 또 하늘의 별따기이다.
어느 것을 좇는 게 맞다는 정답은 없기에 무엇을 좇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되려 존중받아야 할 부분이다. 다만 문제는 ‘척’에 있다. 철학을 좇는 사람이면서 돈을 좇는 척을 한다던가 돈을 좇는 사람이면서 철학을 좇는 척을 한다던가 말이다. 전자는 자신을 해하고 후자는 타인을 해한다. 누군가는 자신도 자신을 몰라 무의식적으로 그런 척을 하다가 들통이 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그런 척을 하기도 한다. 칼날이 어디로 향하든 ‘해’라는 형태를 띠면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공부'
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사업과 사람을 정리하면서 언니는 금전적으로 꽤나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언니는 젊은 나이에 적은 돈으로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결을 가진 사람이 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음에 좋았다.
“개인레슨이 또 있어서 가봐야겠다. 여행 잘 다녀오고.”
“응 또 연락할게”
개인 레슨 일정이 있는 언니를 보내고 나는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나는 제주에서 사람들과 무탈히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좇는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