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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Feb 11. 2024

제3화 그리움, 선택의 무게

 “저 졸업식 좀 도와주고 올게요”

 교담실을 같이 쓰는 선생님들께 이야기하고 강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6학년들의 졸업식이자 나의 방학식날이다. 나는 교장선생님께서 졸업장을 학생들에게 수여할 때 옆에서 졸업장을 건네주는 역할을 맡았다.


 강당은 졸업을 축하해 주러 모인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내 6학년 졸업식 때는 어땠더라. 회상해보려고 했으나 풍경도 마음도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6학년 졸업식의 순간은 내 뇌에게 취사선택 당하지 못했나 보다. 그만큼 강렬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저걸 다 나눠줘요? “

 강당 무대 위에 쌓여있는 상장을 가리키며 6학년 부장선생님께 물었다.

 ”네, 교장선생님께서 다 한 명씩 나눠 주시겠다고…“

 우리 학교 6학년 학생은 90명이 조금 안된다. 거기에 각종 대외상까지 더해지니 상장이 대략 100개 정도는 돼 보인다. 그저 상장을 건네주기만 하면 되니 별스럽지 않았다. 사실 교장선생님이 어떤 성향인지를 알기에 별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답다 싶었다. 좋으신 분이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뒤이어 오늘의 주인공인 6학년 학생들이 후배들과 가족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강당으로 입장했다.


 이 박수갈채들은 ‘끝났다. 수고했다.’의 의미일까 ‘시작이다. 응원한다 ’의 의미일까. 아니면 둘 다 이려나. 끝나봤자 어차피 다시 시작하는데 잠시의 끝남을 축하하는 게 크게 의미가 있을까. ‘끝났다. 수고했다’의 의미라면 진정한 박수갈채는 장례식 때 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례식 때 슬퍼하고 우는 이유는 더 이상의 시작이 없기 때문일까. 그럼 지금 이 박수갈채들은 끝남에 대한 기념보다는 시작에 대한 응원의 의미가 더 크겠다.

 그런데 더 이상의 시작이 없다는 게 슬퍼할 일일까. 내 장례식 때는 눈물보단 박수가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맥락 없이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지 못한 채 졸업식을 관람하고 상장 수여 도우미 역할을 마쳤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담실로 다시 돌아가는 길, 담임선생님 곁을 쫓아가며 울고 있는 4학년 아이들을 발견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다 못해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곤 인사한다. 방학식날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눈물을 보이는 아이들.


 그리움이 가진 무게를 아는 사람에게 헤어짐이라는 건 늘 슬프다. 시간이 쌓여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그리움이 가진 무게는 무거워진다. 다만, 감정은 늘 이성을 부분적으로 가끔은 전체적으로 가리기 때문에 가리어진 이성을 들춰내  ‘그 익숙함이 진정 행복했는가.’라고 질문해 볼 필요는 있다.


 그들의 1년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둘다였는 지 나는 모른다. 다만, 1년이라는 시간이 쌓은 익숙함. 그리고 함께 무거워진 그리움은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다.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려고 눈물이라도 흘려 내보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3월이 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호호 웃고 있긴 하겠지만.


 “선생님, 학교에서 점심식사 도시락 단체 배송시킨다는데 선생님 드시고 갈 거예요?”


 교담실에 들어가자 실을 같이 쓰고 계신 다른 선생님께서 물었다. 방학식날에는 학교급식이 운영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점심을 먹지 않고 하교하지만 교직원의 근무시간은 오후 4시 30분까지라서 보통 학교에서 단체로 도시락이나 김밥을 주문하곤 한다.


“아뇨, 저 11시 50분에 조퇴 썼어요. 안 먹고 바로 가려고요.”


 할 수 있다면 식사는 혼자 조용히 하는 게 편하다. 같이 먹는 식사가 불편하진 않지만 혼자 먹는 것만큼 편하진 않다. 오늘은 방학식을 기념하여 혼자 하는 식사를 내게 선물하려 한다.


“먼저 가볼게요. 방학 잘 보내세요.”

“네, 제주 조심히 다녀오시고요. 항시 문 잘 잠그시고, 안전 운전하시고.”

“네 그럴게요. 걱정 마세요.”


 중학생 자녀가 있는 선생님은 자녀를 걱정하는 것마냥 나를 걱정해 주셨다. 늘 따뜻하시다.


‘그래서 점심은 어떤 맛있는 걸 먹어볼까.’


 운전대를 잡고 식사메뉴를 고민하다 졸업식, 그리고 울던 아이들을 회상하며 ‘헤어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생각은 이렇게 자주 샛길로 새곤 한다.


 32살인 나에게도 여전히 익숙함과 헤어지는 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소 아프다. 즐겁게 춤을 배우고 췄던 댄스 학원에서의  월, 수, 금 오후 7시 30분. 그리고 남아서 추고 싶은 안무를 함께 친구와 맞추다 늘상 들었던 직원의 똑똑, ‘저희 마감시간입니다’라는 음성. 리듬도 치고 각종 딥톡으로 생각에 경종을 울렸던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의 드럼학원. 내 식사의 8할을 책임졌던 동네에서 찾은 건강 김밥 맛집, 그리고 애정했던 사이드 메뉴 야채튀김, 집에서 풍겼던 방향제의 꽃향기, 나와 공상을 함께하던 내 침대 곁의 각종 그림들, 시각적 안정감을 더해줬던 간접무드등, 익숙해서 편안한 동네 길거리, 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부모님과 나누는 딥한 대화, 사랑스러운 조카의 치명적인 눈웃음  등 나는 나의 익숙함에게 한 달 동안 헤어짐을 고해야 한다. 견고히 한 루틴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는 불특정한 불안에 휩싸여 아파하곤 한다.


 다만, 학생들의 헤어짐과 내 헤어짐의 다른 점은 학생들의 헤어짐은 타의적이고 나의 헤어짐은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나를 ‘어른’이라고 지칭할 자신은 없지만 ‘학생’과의 구분을 위해 편의상 ‘어른’이라고 지칭한다면, 어른의 난제는 늘 선택할 수 있음에 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어서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면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사람을 참 머리 아프게 한다.


 헤어짐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아까 말했던 그 질문말이다. ‘익숙한 일상이 진정 행복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석하게도 대개는 헤어지고 난 후에야 낼 수 있다. 다만, 헤어짐을 선택했을 시 그리움의 무게를 감당할 각오는 해야 한다. 고로 나는 답을 얻기 위해 그 무게를 감당하기로 선택했다.


 어른의 선택지에는 늘 일정량의, 각자 다른 형태의 아픔이 포함되어 있다. ‘선택한다’는 곧 ‘어떤 모양의 아픔을 일정량 취한다’와 동일어가 된다. 어떤 모양일지, 얼마나 일지는 까봐야 안다. 그래서 머리가 아픈 것이다.


 ‘가츠동을 먹어야겠다.’


 보통은 김밥을 먹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색다른 메뉴를 먹고 싶었다. 집 근처 반찬가게에 들러 가츠동을 포장해 갔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제주에 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배를 타고 가야 해서 오늘 저녁에 짐을 다 싸두어야 한다. 한 달 동안의 여행이니 짐 싸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잠시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


“한 달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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