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하지만 행복은 단지 기분일 뿐이다. 희로애락처럼 감정의 한 형태이다. 다만 행복은 장기간 지속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데는 차이가 있다.
나는 편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기쁨이 지속되면 행복이 된다. 하지만 오래도록 버텨낸 끝에 겨우 얻어낸 행복일지라도 영원하지 않다. 감정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쉽게 영향을 받고 변화가 빠르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변덕스러운 행복을 삶의 이유로 두었다. 앞서 말한 사람들처럼 행복은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였고, 닿을 수 없는 이상이었다. 그때 당시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행복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으려 아등바등하고 기분이 다운되면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기쁘다가 좌절되길 반복하며 감정의 파도를 겪고 나니 지금은 잔잔해진 상태다.
현재의 나는 행복하다. 내가 규정하는 행복은 안정적인 상태이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직장에 들어가고부터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행복하지
재정 상황, 건강 상태, 사회적인 교류 등등을 고려했을 때 모든 면에서 지금이 가장 안정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재, 통장 잔고는 사치를 부릴 만큼 풍족한 편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직업도 겨우 최저임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으나 아직 일할 날이 많이 남았다. 또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한 편이다. 가족들과의 크게 사이도 나쁘지 않다. 몇 없는 친구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안정된 현실은 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지금 차고 넘칠 만큼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붙잡는 노트북도, 해가 지고 10시가 되면 늦은 저녁식사로 떠들썩해지는 식탁도,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사소한 슬픔도, 모두 나의 행복요소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언젠가 깨질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소소한 일상이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불안과 함께 행복이 유지된다. 이런 모순된 감정 때문에 안정된 행복을 누리는 가운데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이직과 아프다는 말의 횟수가 잦아지는 부모님, 점점 늘어가는 예측 못할 상황들. 그래서 나는 여태까지 지내온 그 어떠한 날보다도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한편으로, 앞으로 있을 그 어떠한 날보다도 행복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갈수록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중히 여겨온 존재들을 잃어갈 것이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행복이 변덕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죄책감과 상실감도 언젠가 다른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란 거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나’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누릴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관계를 맺은 사람들보다 앞으로 중요한 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세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해서 접할 것이다. 그럼 지금의 행복이 언젠간 부서진다 해도, 여태 경험하지 못한 큰 좌절을 겪는다 해도 그렇게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이 길고 횡설수설한 글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진 모르지만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리 삶의 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갑자기 슬픔이 닥친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기쁨이 오고, 행복이 올 테니까 말이다. 우선 내가 할 일은 무엇이 내 행복을 만들어주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규정하는 행복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