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증오로 변질되어가는 과정
사랑이 악연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서로를 놓지 못해 했던 결혼이, 나중에는 족쇄가 되어 돌아온다. 사랑은 했던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상대에게 매정하게 굴기도,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그토록 열정이 넘쳤던 관계는 고작 몇 년 만에 증오뿐인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그럼에도 사랑은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숭고하고 영원한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예술 작품들은 사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환상이나 위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냥 알겠더라. 싫어하는 사람을 볼 때는 이런 눈이겠구나
현실의 사랑은 냉혹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사람이더라도 작은 결점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한번 금이 간 관계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다. 작았던 결점은 점점 크게 느껴지고, 이전의 장점은 모두 단점이 된다. 무엇이 이토록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상대, 혹은 내가 실수나 잘못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영화, <30일>에서는 이혼의 이유를 ‘누구 잘못이다 ‘라고 말하기 애매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종족처럼 보인다. 한 명은 강박적이고 예민한 사람인 반면, 또 다른 한 명은 직설적이고 충동적이다. 심지어 성격뿐만 아니라 직업, 가정환경, 취미,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게 없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이 만나 한 공간에 살게 되니, 배려하기 위해 했던 행동도 오히려 독이 된다. 결혼 생활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고 이혼하려던 그때,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게 된다. 그것도 두 사람 다. 기억이 사라졌으니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었던 사건들도 없던 일이 됐다. 그렇게 백지가 된 두 사람은 다시 사랑에 빠진다.
우리의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미워하는 게 좋아하는 것보다 더 커지게 되면 이혼하는 거다. 그래서였을까, 여자는 기억이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서로를 미워한 기억이 더 많았을 부부에게 기억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관계의 종말이 될 테니까 말이다.
영화 <30일>은 지독히도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특히 사이가 어긋나게 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는데, 이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갔다. 비단 연인 사이뿐만이 아니라 친구나 가족 등 친밀한 사이가 틀어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조금씩 안 맞는 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상대에게 좋지 않은 기억들이 쌓여가면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 못됐다는 굳건한 믿음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결국엔 상대가 어떤 짓을 해도 미워 보이게 된다. 슬프긴 해도 인연을 끊는다는 건 그런 과정을 거친다. 도저히 상대를 참아줄 수 없는 지경이까지 미워하게 되는 과정을 말이다. <30일>은 흔히 봐왔던, 뻔하디 뻔한 한국 로맨스이다. 그러나 영화에 가득 담긴 코미디는 진부함도, 시간이 가는 것도 잊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