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42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27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은 내가 그려놓은 편견을 넘어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다르게 느껴지는 빛과 어둡고 두꺼운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로 편견을 넘어 날아가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서점에 깔린 수만 권의 책 중, 당신은 왜 그 책을 집어 들었는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이미 당신이 맞다고 믿는 신념을 단지 '확인'받고 싶어서였을까.
우리는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책이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그랬다. 보고 싶은 문장만 골라 읽고, 내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에서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문장을 만나면
"이 책은 나랑 결이 안 맞아."
"다 아는 내용이네."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마치 나를 흔드는 문장으로부터 도망치듯.
밀란 쿤데라는 이런 태도를 '키치'라고 불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보도록 현실을 단순화하는 태도. 이 정의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너무 정확한 지적이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독서를 '지식을 쌓는 행위'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들여다보니 대부분의 독서는 '자기 확인'에 불과했다. 읽기는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책장은 넘어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책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장이야말로 내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문장이었는데 말이다.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에서 시작되는데, 나는 그 불편함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날 이후 나는 독서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불편한 문장 앞에서 멈춰 서기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을 그냥 넘기지 않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흔드는 한 문장을 손으로 천천히 옮겨 적어보기로.
김종원 작가는 다독보다 정독을, 정독보다 사색을 권한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지 상상해 본다. 쓰고 또 지우고, 망설이고 또 결단했을 그 시간들을.
그런데 우리는 그 겹겹이 쌓인 사유의 층을 단 몇 분 만에 훑고 지나가며 "이 정도는 나도 안다"라고 말한다. 이건 오만이다. 책에 대한 오만이자, 나 자신에 대한 기만이다.
책 속에는 길도 답도, 그리고 보물이 숨어 있다. 다만 그 보물은 빠르게 달리는 사람에게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물은 오직 자주 멈춰 서서 보이지 않는 곳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사람에게만 빛을 허락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그렇다. 대화 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관계에서 실수가 잦아지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말을 '나의 편견'이라는 필터로 대충 걸러 듣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상대의 진심이라는 다른 세계로 날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멈추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필사에서 찾았다.
필사는 단순히 글자를 옮겨 적는 행위가 아니다. 흐르는 생각을 붙잡아 내 안에 천천히 안착시키는 시간이다. 손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다 보면, 그냥 읽었을 때는 놓쳤던 단어들이 새롭게 보인다. 문장의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가 작가의 호흡처럼 느껴진다.
첫째, 생각이 흘러가지 않고 머물렀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금방 잊어버렸던 문장들이 손으로 쓰는 순간 뇌 깊숙이 각인되었다.
둘째, 요동치던 감정이 정리되었다.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좋은 문장을 필사하면, 문장의 리듬이 내 호흡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셋째, 타인의 언어가 내 삶의 언어가 되었다.
그냥 읽었을 때는 "좋은 말이네" 하고 지나쳤던 문장들이, 필사 후에는 실제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필사는 '잘 쓰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좀 더 온전하게 살기 위한 태도'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문장을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갈 때, 비로소 나의 편견이라는 껍질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세가 말한 '새로운 통찰력'이 조용히 싹튼다.
이 질문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면, 당신은 이미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필사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거창한 목표도 필요 없다.
오늘 마주한 책에서 가장 마음을 건드리는 한 문장만 골라보면 된다. 공책이든 메모지든, 심지어 휴대폰 메모장이든 상관없다. 그냥 그 한 문장을 천천히, 정성껏 옮겨 적어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한 문장을 옮겨 적는 1분의 시간이, 당신의 나머지 23시간 59분을 전혀 다른 밀도로 채워줄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 카페에서, 잠들기 전 침대 맡에서. 어디서든 좋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롭지만, 함께 멈추는 길은 든든하다. 함께 멈추고, 함께 읽고, 그리하여 함께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당신을 필사로 내면 다지기 오픈방으로 초대한다.
오늘은 딱 한 문장만 적어도 충분하다.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의 세계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넓혀줄 테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필사를 '숙제'가 아닌 '선물'로 느끼게 되길 바란다.
필사는 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의 편견을 비워내고 타인의 진심을 들여오는 일이니까. 오늘 당신의 펜 끝에서 시작될 그 작은 변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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