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53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38
어두운 세계의 말할 수 없는 고통, 나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가끔 실망하기는 하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삶이 나를 속인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숨을 쉬는 것뿐이었던 시간. 그때 나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대신 책을 펼쳐 들었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친구에게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성경이나 불경을 펼쳐 기도문을 따라 적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복음송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탈출구가 있다.
나의 탈출구는 책과 기도였다.
책 속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글자였다. 하지만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문장의 온기가 내 차가운 마음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내 손을 거쳐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천천히 바뀌어 가는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속엣말을 꺼내어 기도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던 것들이 침묵 속에서 비로소 말이 되었다.
필사는 나에게 단순한 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나를 붙잡아준 유일한 밧줄이었다. 책은 위로였고, 문장은 해답이었다. 기도는 쏟아낼 곳이었다.
우리는 예고 없이 낯선 어둠을 만난다.
그 순간에는 왜 하필 나인지,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고통 그 자체는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 고통을 해석할 '나만의 언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은 평온했던 날들이 아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에 책을 펼쳐 들고 써 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결국 삶은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떤 언어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고난은 사실, 당신에게만 전하고 싶은 선물을 품고 찾아온 '변장된 축복'이다.
필사는 흔들리는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우는 일이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정갈한 문장 속에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당신이 오늘 한 문장을 필사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당신을 창조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혼자 걷는 길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이제는 함께 걸어도 좋다.
거창한 각오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을 울린 문장 하나를 가만히 적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헤세든 성경이든 시집이든 상관없다. 종이든 노트든 휴대폰 메모장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그 문장과 당신이 만나는 순간이다.
책 속에서 위로를 찾고, 문장 안에서 해답을 발견하는 경험. 그것이 당신만의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은 필사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가?
그 문장이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길 바라는가?
그리고 그 문장을 닮아갈 당신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필사로 내면을 다지는 이 길 위에서, 각자의 속도로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고 함께 써 내려가고 싶다.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될 그 작은 기적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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