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필사 474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59

by 서강
그대의 고독과 감정, 그리고 운명에 언제나 "네"라고 답하라.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길은 반드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이어질 것이다. -헤르만 헤세


거울 속 낯선 나에게, 그래도 "네"라고 말하는 법

아이의 젖비린내와 밀린 설거지, 그리고 내 이름 석 자보다 '누구의 엄마, 아빠'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문득 거울을 본다. 그곳에는 내가 알던 내가 없다.


결혼이라는 문만 열면 장밋빛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선 길은 자욱한 안개 정국이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가족의 무게가 되고,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후회로 남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나 또한 그랬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고집스럽게 걸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사랑하는 이들의 어깨 위에 짐으로 얹혔다. 자책이라는 이름의 봄비가 노크하는 아침, 헤르만 헤세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대의 운명에 언제나 '네'라고 답하라."


그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이 선택이 옳은지도 모르는데, 이 아픔이 합당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꺼이 '네'라고 할 수 있느냐고. 그건 체념처럼 들렸고, 포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말과 오래 함께 앉아 있을수록 헤세의 말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길을 잘못 들어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스스로 '네'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다. 확신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 같은 게 아니다. 수없이 망설이며 신중함이라는 흙을 꾹꾹 밟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뿌리다.


밀린 설거지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도,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마주하는 그 정적도, 사실은 삶이 내게 묻는 질문이다.


"이 길에 진심으로 있을 수 있겠느냐"라고.


과거의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지금 이 순간의 수용은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


헤세의 말처럼 우리는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고 그 운명을 껴안는 사람에게, 삶은 반드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어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속도에 맞춘 '예'를 남발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의 결을 살피고, 고독을 충분히 맛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려 한다. 그것이 나를 아프게 했던 과거에 대한 예우이자, 앞으로 마주할 운명에 대한 가장 정중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굽이진 길 또한, 결국 당신을 가장 빛나는 곳으로 데려다 줄 유일한 통로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선택과 고독 앞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주길 바란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고독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네'라고 답해본 적이 있나? 그 한마디가 당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https://open.kakao.com/o/gWx0m5Wh


매거진의 이전글"손절할까 말까?" 동창회에서 깨달은 진짜 본성 구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