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75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0
카페 창가에 앉아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익숙한 풍경 속의 나였지만, 어딘가 낯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입고 있는 옷과 표정,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고민조차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이질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길들여진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이라는 트랙 위에 올라타면 일단 안심이 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적당한 관계, 평균적인 삶의 궤적.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길이 내 길인 줄 착각하며 살게 된다.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
이 평범한 문장들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주문이다. 보이지 않는 밧줄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단단히 묶는다. 오래 묶여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밧줄의 존재조차 잊어버린다. 내가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걸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바깥의 소리에만 주파수를 맞추고 살았다.
타인의 칭찬에 안도하고, 서늘한 평가에 밤잠을 설쳤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곧 성실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착한 어른'으로 살수록 내 안의 갈증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 아침, 헤르만 헤세의 한 문장이 가슴을 정통으로 찔렀다.
"나는 내 속에서 솟아나는 그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오랜 시간 분투했다. 그게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내 안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네 길이 아니야."
"너는 전혀 다른 삶을 갈망하고 있잖아."
오래전부터 그 목소리는 거기 있었다. 다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외면했을 뿐이었다.
김종원 작가는 말했다. 진짜 직업이란 어쩌면 '나의 길을 찾는 일 '이라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써의 직업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 곧 삶의 본질이라는 뜻일 게다. 그 문장앞에서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했는지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직업은 있었지만, 나의 길은 없었던 것이다.
올해 나의 화두는 '정리'다.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작업이 아니다. 내 마음의 층위를 덮고 있는 관계, 관성적인 생각, 낡은 습관들을 걷어내는 일이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소음과 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속삭임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정리가 절실하다.
버려야 비로소 보인다. 걷어내야 비로소 들린다.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대단한 혁명이 아니다.
어제와 다른 거창한 결단도 아니다. 그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작은 용기'면 충분하다.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처음으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그 순간에 시작된다.
오늘 당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솟아오르고 있나.
세상이 씌워준 프레임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곳엔 오직 당신만이 살 수 있는 '그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헤세가 그토록 오랜 시간 분투하며 찾으려 했던 것,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그 마음속에 이미 있다.
이제 그 밧줄을 풀고, 당신만의 속도로 걸어볼 시간이다.
혹시 당신도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말 뒤에 진짜 원하는 마음을 숨겨두고 있지는 않나요?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내 안의 온도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진짜 내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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