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76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1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나는 한때 빠른 사람이 성공한다고 믿었다.
빨리 결정하고, 빨리 실행하고, 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고.
그래야 앞서가는 사람이 된다고.
그 믿음 아래 내린 수많은 선택들이
얼마나 깊은 후회의 흔적을 남겼는지,
지금도 가끔 그 잔재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쓰는 것도 좋지만, 생각하는 것은 더 좋다. 똑똑한 것도 좋지만, 인내하는 것은 더 좋다."
이 문장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멈췄다.
쓰는 것보다 생각이 먼저라는 것.
똑똑함보다 인내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
이 두 문장이 그냥 글귀가 아니라,
삶의 설계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쓴 글과 생각이 묻어난 글은 읽는 순간 느낌이 다르다.
독자는 안다.
이 글이 손끝에서만 나온 것인지,
오랜 시간 내면을 거쳐 나온 것인지.
진정성은 숨길 수 없다.
생각의 깊이가 곧 글의 온도가 되기 때문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에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생각이 없어"라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차이는 작아 보여도,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로댕이 왜 하필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했겠는가.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싸우는 사람도 아닌.
고요히 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
그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모습이라고
로댕은 돌 속에 새겨 넣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 말이 단순한 정의가 아닌 이유도 거기에 있다.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나 깊이 생각한 자의 편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의 전운이 조선을 뒤덮고 있었다. 수
적으로 열세였던 조선 수군 앞에 일본의 대함대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한산도 앞바다의 지형을 읽고,
적의 전술을 꿰뚫고, 학익진이라는 전략으로 대승을 완성했다
한산대첩은 그냥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오랜 생각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낸 인내가
만들어낸 역사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분쟁 속에서
전략과 전술의 타이밍을 누가 더 깊이 사유하느냐가
판세를 가르고 있다.
전쟁도, 외교도, 협상도 결국
생각의 깊이와 인내의 크기가 승패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 원리는 거대한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그대로 작동한다.
어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충동적인 선택 앞에서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
답답해도 조금 더 견디며 방향을 다듬는 것.
그 작은 인내들이 쌓여
삶의 전략이 되고, 가정의 미래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가정은 작은 사회다.
아니, 어쩌면 가장 정직한 사회다.
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인내하며 살아가느냐가
그 공동체 전체의 온도를 결정한다.
참을 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나는 이렇게 읽는다.
참는 그 순간, 사람은 반드시 생각하게 된다고.
분노가 가라앉는 자리에 지혜가 들어서고,
급함이 물러나는 자리에 전략이 자라난다고.
인내는 단순히 참는 행위가 아니다.
생각을 완성시키는 시간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할 때
후회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너무 늦게 알았지만,
그래서 더 분명히 안다.
짧은 생각으로 내린 선택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마음을 할퀴는지를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다.
생각은 화수분이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창의력이 솟고,
방향이 보이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피할 수 있는 실수가 보인다.
생각은 쓸수록 고갈되는 자원이 아니라,
쓸수록 더 풍성해지는 샘이다.
오늘,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것이 언제였는가.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것에만 익숙해진 건 아닌가.
헤세의 말처럼,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똑똑함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인내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했고,
나의 삶도 반드시 증명하게 될 것이다.
https://open.kakao.com/o/gWx0m5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