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말고, 나생

[필사 480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5

by 서강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밖을 본다.

누군가의 시선을 확인하고, 세상의 평가를 살피고,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바깥을 향해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한 피로감이 찾아온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토록 공허한가.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우리는 마치 거북이처럼 내면 깊이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거북이는 위협을 느낄 때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그것은 도망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본능적인 선택이다. 헤세가 말한 '내면으로 파고드는 일'도 그렇다.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로 돌아가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바쁨을 성실함으로 착각했다.

일정이 가득 찬 달력을 보며 안도했고, 할 일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정작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해야 할 일들에 쫓기면서,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가장 뒤로 밀려 있었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삶을 살았던 헤세의 말이 그래서 처음엔 낯설게 들렸다. 자기 자신과 함께 지낸다는 것.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천천히 생각해 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에 기쁜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대단한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잠깐, 바깥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소음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뉴스, 알림, 타인의 말, 비교, 기대. 그것들은 쉼 없이 나를 흔든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나'를 잃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고요가 머무는 우물이 있다. 아무리 소란스러운 날에도, 아무리 지친 밤에도, 그 우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그곳을 찾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다. 오늘 왜 이유도 없이 마음이 무거웠는지, 그 작은 감정 하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나에게 머문 것이다.


헤세는 말했다.

"인간의 삶이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해 가는 여정이다."

도달해 가는 여정이다.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평생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려는 존재다. 완전히 나를 알 수 없어도 괜찮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 그것이 삶을 깊어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단 5분이라도.

바깥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나는 지금 어떤가."

그 작은 질문 하나가, 나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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