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81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6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배울 것이다."
이 문장 앞에서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스승이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스승을 찾으라는 말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가장 오래 나를 지켜본 존재가 누구인가.
어떤 선생님도, 어떤 멘토도, 심지어 부모님도 아니다.
바로 지금의 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 앞에서 얼마나 흔들렸는지, 흔들리면서도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그 모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목격한 존재는 오직 나뿐이다.
그러니 스승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오랫동안,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무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나는 과연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인가.
스승이라면 분명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보다 삶으로 먼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엄마로 살면서 이 질문이 특히 날카롭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부모 등을 보고 배운다는 걸,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말로는 "욕심부리지 마"라고 하면서 욕심스럽게 살고 있다면, 아이는 말이 아니라 삶을 배운다. 내가 나를 속이면 스승은 길을 잃고, 그 길을 잃은 스승에게서 자라는 제자도 함께 방향을 잃는다.
주식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기술의 문제로 접근한다. 어떤 종목을, 언제 사고, 언제 팔 것인가. 물론 기술도 중요하다. 그런데 기술보다 먼저인 것이 있다.
마음의 그릇이다.
기준 없는 욕심은 돈을 벌어도 결국 마음을 잃게 만든다. 수익이 났는데 왜 공허한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본다. 그건 돈을 잘못 번 게 아니라, 잘못된 마음으로 번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덕이 될지 독이 될지는 쓰임을 결정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그리고 독이 될 돈이라면, 차라리 잃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마음공부가 먼저다. 투자 공부보다, 시장분석보다 먼저.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나는 매일 다른 손님을 만난다.
어떤 분은 오랫동안 모은 전 재산을 들고 오고, 어떤 분은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설레는 얼굴로 문을 연다. 어떤 분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 동네 어때요?"라고 묻고, 어떤 분은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확인받고 싶어서 온다.
그 순간마다 나는 선택을 한다.
이분에게 진짜 필요한 곳을 안내할 것인가, 아니면 내 수익에 더 유리한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인가.
내가 직접 거주할 수 있는 곳만 권하는 마음과,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권한다는 마음은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길이다.
한쪽은 사람을 향하고, 한쪽은 돈을 향한다.
손님은 그 차이를 처음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집을 소개했는지, 나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계약서 한 장 뒤에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담겨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 그 무게를 잊지 않는 것. 빠른 계약보다 바른 안내가 먼저라는 기준을 매일 다시 세우는 것.
그 기준이 흔들릴 때, 나는 나의 스승을 잃는다.
그 기준을 지킬 때, 나는 조용히 나의 제자를 바르게 키운다.
결국 어떤 집을 소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소개하느냐의 문제다.
오늘 나는 손님 앞에서, 나에게 어떤 스승이었는가.
그 질문 하나를 오래 붙들고 싶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헤세가 말한 "나 자신의 제자가 되어 나를 더 알고 싶다"는 문장은, 어쩌면 이걸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선택하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나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나의 스승이 되는 길이다.
스승과 제자는 결국 한 사람 안에 함께 숨 쉬고 있다.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떤 스승으로 살 것인가.
그 질문 하나를 오래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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