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482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67
키, 외모, 스펙, 현재의 위치.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교의 세계 속으로 던져진다. 옆집 아이와 비교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비교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비교는 멈추지 않는다. 그 비교의 칼날은 늘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큰 병은 없었지만 잔병치레가 잦았고, 무엇보다 피부색이 유독 어두웠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건 늘 눈에 띄었고,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임신을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든 걱정이 그것이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내 피부를 닮을까 봐.
그런데 걱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쓸데없는 끌어당김 덕분이었을까, 세 아이 모두 내 피부를 닮았다.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그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이 관대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며, 그건 당연히 자신의 운명까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솔직히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운명을 사랑하라니. 어두운 피부를, 잦은 병치레를, 아버지의 기억조차 없는 유년 시절을 사랑하라니.
그런데 헤세가 말하는 자기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이 최고야'라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처한 상황 그대로를,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게 진짜 자기 사랑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늘이 주신 세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것. 둘째, 허약한 것. 셋째, 못 배운 것."
가난했기에 성실함의 가치를 일찍 알았고, 허약했기에 몸을 아끼고 건강을 소중히 여겼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기에 평생 배움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남들이 불행이라 부르는 것들을 그는 은혜라고 불렀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나에게도 하늘이 준 세 가지 은혜가 있다.
첫째, 미숙아로 태어난 것.
덕분에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자주 내 몸을 돌아본다. 그 습관이 나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둘째, 어두운 피부색을 가지고 태어난 것.
덕분에 피부에 더 신경을 쓴다. 자외선 차단에, 수분 공급에, 피부 루틴에. 어쩌면 피부에 무관심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방치된 피부로 살았을지 모른다.
셋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
기억이 없으니 원망할 것도 없다.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보다, 지금 곁에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자유롭게 했다.
이 세 가지가 없다고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것은 없다. 오히려 이 세 가지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가끔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보며 부러워한다는 걸 안다. 며느리가 백옥 피부라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는 제발 엄마의 유전자를 닮기를 바라는 걱정을 먼저 한다는 것도.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마. 엄마도 오래 걸렸어. 근데 결국 알게 되더라. 우리가 가진 것이, 사실은 우리를 만든 것이라는 걸."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완벽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덮어두고 괜찮은 척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들을, 심지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나를 만든 재료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헤세의 말처럼,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가장 깊은 형태의 용기다.
오늘, 내가 갖지 못한 것 대신 내가 가진 것 하나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해 보자. 거기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첫 번째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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