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나는 천천히 무너지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휴일

by 서강


5초의 법칙은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다. 발끝으로 툭 밀어 침대 밑으로 쑤셔 넣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폰 화면이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빛을 참아가며, 유튜브가 나를 끌고 간다—알고리즘이 오늘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그러다 갑자기, 낮잠 속으로 날아든 전화벨처럼


루틴 해야지. 운동. 필사. 안 하면 또 밀린다.


"밀린다"는 단 두 글자가 척추를 곧추세운다. 용수철처럼, 3초 만에 책상 앞이다. 필사를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한 번 고른다. 왜 휴일마다 미룸병이 찾아오는 걸까—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얄팍한 안도감이, 그래도 따뜻하다.


카페에서 모셔온 빵들이 나보다 먼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어떤 캡슐을 고를까. 캡슐 서랍을 열면 색깔들이 저마다 이름을 내민다. 보라색, 네가 오늘 간택되었다. 머신이 덜덜덜 몸을 떨며 요란한 감사 인사를 건넨다.


스콘에 커피. 소박하고 럭셔리하다—이 두 단어가 같은 문장에 놓일 수 있다는 것, 휴일만이 아는 비밀이다.

카톡 프로필 사진들이 앞다투어 봄을 신고한다. 진달래, 매화, 목련—웨이팅 번호표를 뽑고 줄 선 꽃들의 소란이 화면 밖까지 넘쳐흐른다.


귀찮다.


아파트 화단에 핀 꽃 하나면 충분하다. 굳이 어디 가지 않아도, 봄은 이미 와 있다. 거창하게 누리지 않아도 봄은 봄이다.


욕조에 물을 트니 쏴아—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스콘과 커피를 창자와 의논 없이 마음대로 처리하고, 적당히 데워진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던진다.


뜨거운 김이 코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물소리가 귀 아래서 웅웅 잠긴다. 온도가 등을 짓누르듯 감싼다.


아—시원하다.


일주일 치 피로를 피부 위에서 야단치듯 벗겨내고, 나는 오늘의 나로 돌아온다. 아무도 모르는 이 욕조 안에서, 휴일은 완성된다.


미루고, 떠밀리고, 겨우 해내고, 따뜻한 물에 녹는 것— 그게 나의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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