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위에 몰래 키우는 코끼리

말은 그 사람의 지문이다

by 서강

[필사 507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16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셰익스피어는 허풍을 거품에 비유했다. 왜 하필 거품이었을까. 거품은 아름답다. 빛을 받으면 오색으로 빛나고, 둥글고 완전해 보인다. 그러나 누구나 안다.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는 것을.


가게 알바로 출근한 아들 친구가 있었다. 아들은 미리 귀띔했다. "엄마, 저 친구 말은 열 마디 중 한 마디만 믿으면 돼." 나는 설마 했다. 녀석의 말은 입 안에서 정교하게 빚어진 비누 거품이었다. 닿는 순간 터져버릴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공중에 날려 보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미안해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그런데 지나고 보니, 과연 그게 배려였을까.

아들이 말했다. "엄마, 걔 초등학교 때 자기 할아버지 집 옥상에서 코끼리를 키운다고 해서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철없던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코끼리 이야기에 눈을 빛내던 친구들, 그 반응이 꼬마에겐 엄청난 재미였을지 모른다. 그 재미가 어른이 되어서도 형태만 바뀐 채 그 친구의 품격이 되고 말았다. 거품이 단단한 성벽이 되도록 우리가 방관한 건 아니었을까. 마음이 무겁다.


허언은 타인을 속이기 전에 자신의 그릇을 먼저 깨뜨린다. 나중엔 진심을 말해도 담아낼 곳이 없어 모두 흘러넘치고 만다. 허풍으로 쌓은 자신은, 결국 거품처럼 꺼질 수밖에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지문이다.


나는 오늘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돌아본다. 화려한 수식어, 과장된 성취, 남에게 보이기 위해 옥상 위에 몰래 키우는 코끼리는 없는지. 오래가는 건 언제나, 진짜였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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