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생겼다

행운을 땅에 심었다

by 서강

[필사 506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15



아파트 단지 텃밭 추첨에 당첨됐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먹겠습니다. 나는 이 텃밭과 함께할 수 있다.


다음 주부터 저 작은 땅이 오롯이 나와 함께 하게 된다는 사실 하나로, 아침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설렜다. 텃밭으로 가던 길에 문득 발걸음이 멈췄다. 클로버가 무리를 지어 속삭이고 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들여다보는데 네 잎 클로버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었다. 동서남북 네 귀퉁이에 하나씩 심었다. 행운을 땅에 먼저 심고 싶었다. 씨앗보다 먼저, 계획보다 먼저.


그 작은 의식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오늘 아침 필사를 하다가 셰익스피어의 문장 앞에 섰다.

여름이라는 계절보다 당신이 더 온화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대개 '사랑스러운 당신'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애쓴다. 누군가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길, 이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겁게 나를 아껴주길 갈구한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긴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의 온기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과 오롯이 마주 앉아 이 시간을 즐길 줄 아는 힘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립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경작하는 시간이다.

텃밭의 작물이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듯, 내 삶의 의미도 내가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 속에서 자라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피서지가 아니어도 좋다. 흙을 만지고, 구상하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일궈내는 그 사소한 즐거움이 나를 여름보다 더 온화한 사람으로 만든다.


결국 인생을 잘 즐기는 법은 거창하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히 근사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100년이라는 긴 여정을 지치지 않고 걷게 하는 유일한 연료다.


오늘 당신의 텃밭에는 어떤 즐거움이 자라고 있는가.

당신은 이미 그 어떤 계절보다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다. 스스로 그 사실을 믿고 즐기기 시작할 때, 삶은 비로소 당신에게 가장 따뜻한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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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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