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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안 되는 이유는 너무 많다.

by 서강


기록의 마법


언어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깊은 통찰처럼, 세상은 주어진 사물이 아니라 내가 보는 사실들의 총합이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다. 전쟁 중 포로 생활 중에도 끝없이 메모했던 그의 노트, 그 안에는 어떤 내면의 세계가 담겨 있었을까?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


메모하는 습관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보존하는 마법의 도구다. 스마트폰 시대에 손끝으로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찰나의 감정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 김종원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는 내 세계에 사랑하는 이들을 초대하는 행위다.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정의해 본다.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함께 경험하는 여행. 그 여행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깨달음이 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 천재의 내면은 때로 세상의 물질적 유혹을 초월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유산마저 거절할 정도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철학자다. 그의 마음속에는 단순한 소유와 성공을 넘어선 더 깊은 통찰이 자리 잡고 있다. 주어진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은 주어진 사물이 아니라, 내가 본 사실들의 총합이다"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 건강이라는 외부의 기준에 매몰된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 너머를 보았다. 그에게 진정한 가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문장 하나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 고뇌와 성찰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의 사유는 마치 깊은 바다를 탐험하듯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끈기 있는 마음 수양. 세상의 표면적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은 성찰. 그리고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부처와 예수는 세상의 물질적 풍요를 초월했다. 그들은 주어진 사물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꿰뚫어 보았다.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오히려 그 손을 세상에 펼쳤다.


그들의 공생애는 소유가 아닌 나눔에서 시작되었다. 물질적 권력이나 명예를 거부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와 사랑을 전파했다. 손아귀에 움켜쥐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손을 펼쳐 타인에게 나누는 순간은 영원히 기억된다.


역사는 증명한다. 진정한 영향력은 소유에 있지 않고, 베풂에 있음을. 부처와 예수처럼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세상에 손을 내밀었던 이들이 인류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인간을 위해 공존하는 자연


최근 산불 진화로 어려움을 겪던 중, 보석처럼 내린 단비를 보며 깨닫는다. 인간의 문명과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그 섭리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감사를 배운다.


언어의 무기고에 좋은 말 한마디를 조심스레 담아둔다.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을 믿는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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