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7, 잘되지 않는 나도 충분히 괜찮다는 무해한 마음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당신도 자신의 육체가
감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영혼은 단지 속아서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영혼은 팔꿈치도 마음대로 펼 수 없습니다.
벗어나려고 온갖 애를 써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육체를 감싼 쇠사슬이
더 강력하게 몸을 칭칭 감아버리죠.
[술집 소년 시편]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잘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최선의 노력이 최고의 결과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니까요. 최고의 예술가와 기업인, 작가와 철학자를 만나며 저는,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까지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내일부터는 나도 잊힐 수 있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되는 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기분 좋은 불안감"을 반복해서 자신에게 주입하는 것이죠.
"잘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기분 나쁜 불안이 아닌 "잘되지 않는 나도 충분히 괜찮아"라는 기분 좋은 불안감을 자신에게 선물해 보세요. 그게 바로 자신을 위한 무해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렵지만 한 걸을 더 나아가는 작은 기쁨을 안전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잘되는 건 원래 힘든 겁니다.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죠.
하지만 잘되지 않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내게 무해한 마음입니다.
백종원, 김수현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 그것은 마치 숲 속에서 가장 높이 자란 나무가 폭풍에 가장 먼저 부러지는 것과 같았다. 유명세의 무게란,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인간은, 조금만 높아지면 교만이라는 친구가 찾아온다. 높이 오르는 것은 곧 낙하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년만년 그 자리를 지킬 것처럼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늘 위대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모임은 특별하다. 1월 7일, 뇌출혈로 우리 가슴을 쓸어내린 도연 선배가 4개월 만에 돌아왔다.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이 육신에 다시 머무는 것, 그것은 기적이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온기, 그가 내뱉는 숨결의 리듬,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사랑과 영혼' 영화에서처럼, 육체를 벗어난 영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곁에는 육체를 벗어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손길을 느끼지 못할 뿐.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별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육신의 허기는 금방 알아차린다. 배가 고프면 꼬르륵 소리가 나고, 목이 마르면 입술이 타들어가니까. 하지만 영혼의 배고픔은, 그것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헛헛한 마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것이 바로 영의 배고픈 신호다. 아무리 물질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을 찾아서 사람들은 오늘도 하이에나처럼, 주색잡기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것으로 과연 채워질까?
인문학과 철학의 뿌리는 결국 성경과 불경에서 시작한다. 도의 끝은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어렵다. 사람으로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자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헛헛함은 더 깊이 지하 땅굴을 파고들었다.
독서와 필사, 글쓰기를 통해 헛헛함을 채워가는 중이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펜이 종이 위를 지날 때마다 마음속 돌멩이 하나, 잡초를 걷어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글자로 옮겨지면서 치유가 된다.
괴테의 시가 내 마음에 하나씩 스며든다. 빗방울이 대지에 스며들 듯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평범한 삶이 지루하고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범한 일상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서지 않아도,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지 않아도, 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기적 같은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집을 나서기 전,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마셨다. 새벽 찬 바람이 내 뺨을 스친다. 새벽바람이 차갑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이 시간이 귀하고 귀하다. 영혼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이런 작은 순간들의 축적이 아닐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느끼고 깨달으며 행하면 사는 것이다. 매일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영혼의 배고픔을 달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확실한 치유의 방법이니까. 마치 오래된 상처에 하루에 한 방울씩 약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