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31
지하철역에서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신이 먼저 부딪쳤잖아!" 목소리에 핏대가 섰다. 상대방 여자는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찼다. "뭘 그런 걸로 난리야." 두 사람 사이로 긴장이 흘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김종원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고통과 분노를 억제할 마음의 크기는 대부분 비슷하다는,
그렇다. 우리는 모두 거기서 거기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살아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비슷한 무게의 감정을 짊어지고 있다. 분노할 때의 뜨거움도, 상처받을 때의 서늘함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을 다스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내 눈에 좋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결이 맞는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따뜻함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나에게 잘해주면 모두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이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좋고 나쁨은 언제나 나와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도 있다. 그들과의 만남은 독처럼 스며들어 오랫동안 아픔을 남긴다. 하지만 반대로 귀한 인연,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나는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조용히 잡아주던 손. 나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고마움을 입 밖으로 꺼내야겠다. 표현할 때 비로소 마음이 전달되니까.
창밖을 본다. 구름 한 점 없지만 맑지는 않은 하늘이다. 강물도 하늘의 기분을 맞추기라도 하듯 잔잔하고 고요하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줄 줄 아는 것이 배려이자 관심이고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헤아림을 받으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헤아림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헤아릴 줄 아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누군가의 작은 한숨에도 귀 기울이고, 미소 뒤에 숨은 아픔도 읽어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