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30
창문을 열자 맑은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겨준다. 내가 마시는 이 공기 한 모금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생명이 안전한 엄마 자궁 속에 있다가 낯선 세상에 나오면 울음을 터뜨린다. 웃을 수도 있는데 왜 우는 걸까? 안전한 곳으로부터 벗어난 두려움이 아닐까? 탄생하는 순간부터 관계의 그물이 엮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품, 아빠의 눈길, 할머니의 자장가. 아이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이미 수많은 관계의 그물 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학교에 가면 짝꿍이 생긴다.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친구가 된다. 회사에 들어가면 동료가 생기고, 취미를 찾아 나서면 동호회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걸어가는 곳마다 관계를 심는다. 마치 발자국을 남기듯,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그저 철학자들의 어려운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단순한 진실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침에 마시는 우유 한 잔도, 입고 나가는 옷 한 벌도 모두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게 온 것들이다.
몇 해 전, 입원을 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병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지, 간병하는 가족의 발걸음 소리가 얼마나 따뜻한지, 무엇보다 건강한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퇴원 후 첫날 아침,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폐 깊숙이 스며드는 그 청량함에 눈물이 났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이 저렸다. 흐르는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이 떨렸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기적이고 선물이었다.
사람들은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눈빛만 봐도, 한숨소리만 들어도,
햇볕을 쬐어본 사람만이 햇볕의 따뜻함을 전할 수 있다. 어릴 때 처마밑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양동이에 받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지금도 비만 오면 처마밑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기 위해 한옥 카페를 찾아 나선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가 겪은 만큼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해는 떠오르고 강물은 흐르고 있다. 하늘은 푸르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우리의 하루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맑은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그 공기를 마시며 생각한다. 내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그 관계 하나하나가 소중한 선물임을,
관계는 때로 무겁고 아프다. 하지만 그 무게와 아픔마저도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증거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창문 너머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관계가 시작되거나 깊어질 것이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