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36
나는 내 이름값을 하고 있을까? 모바일 신분증이 생겼다. 집 주소도 바뀌고, 발급 일자도 새로워진다. 사진 속 얼굴마저 세월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다. 주민번호와 이름이다. 물론 개명을 하면 이름도 바뀐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 이름은 다시 불변이다.
이름은 참 신기하다. 그 사람의 얼굴과 행동을 기억하면서도 "그 사람 있잖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름으로 시작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이 눈앞에 그려진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내 이름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내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6월 첫날 아침이다. 일요일이라 마음이 여유롭다. 뉴스를 들으며 낙동강 줄기의 흐름을 느끼며 모닝커피를 마신다. 매일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후 마시는데, 오늘은 따뜻한 온기가 가슴으로 스며든다. 커피가 내 안에서 나와 하나가 되는 느낌, 온전히 커피 자체를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녹음처럼 푸르던 5월이 자기 할 일을 끝내고 떠났다. 6월이 바통을 받아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이 만든 달력 속에서 나이를 먹고 세월을 느낀다.
옆 동에 가려 베란다에서는 아침 일찍 해를 만나기 어렵다. 1층으로 내려가 해를 만났다. 그 따스함을 온몸으로 받았다. 해의 광선이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조금씩, 치유되는 기분.
해는 이름이 많다. 해, 햇빛, 태양, 일출, 일몰, 석양. 이름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해'다.
이름이 하나로 이루어진 것들의 의미는 크다. 신(神), 왕(王), 강(江), 산(山) 등, 한 글자에 우주의 숨결이 담겨 있다.
강물의 흐름을 느껴본다. 속도와 방향, 그 곁을 감도는 새소리까지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모든 존재는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도 내 삶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 이름값 한다. 혹은, 못 한다고. 이름에도 분명 값어치가 매겨진다.
나는 내 이름값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내 이름이 불릴 때, 사람들 마음에 어떤 온도, 어떤 빛깔의 얼굴이 떠오를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담긴 그릇이다. 오늘 하루, 나는 내 이름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 고요한 물음이, 아침 햇살처럼 가만히 가슴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