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정원보다 근사한 공간은 없습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77

by 서강


씨앗 하나가 피워낸 정원


어떤 날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첫 글자를 적는 순간, 나는 정원사가 된다. 씨앗 하나를 땅에 묻는 마음으로 문장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다.


90일 동안 [나의 현재만이 나의 유일한 진실이다]라는 문장을 매일 써 내려갔다. 처음엔 그저 글자였다. 스무 번째 날 때쯤 되어서야 그 말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십 번째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과거도, 걱정하고 있던 미래도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진실은 지금 이 순간, 펜을 든 내 손끝에서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꽃이 되었다.


두 번째 씨앗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였다. 74일을 품었다. 언어가 세상을 만든다는 것, 내가 아는 만큼만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단어 하나를 새로 배우는 것이 세상을 한 뼘 더 넓히는 일임을 천천히 깨달아갔다.


오늘, 세 번째 꽃이 피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를 77일 동안 마음에 품었다. 시 한 줄이 하루를 바꾸고, 하루가 모여 인생을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베란다 밖을 본다. 누군가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런데도 계절이 오면 꽃이 핀다. 비가 오면 자라고, 햇빛이 내리면 향기를 내뿜는다.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매일 한 줄씩 쓰다 보면 어느새 정원이 된다. 진실과 언어, 태도와 관계, 지성과 기품, 사색과 시. 그 모든 씨앗들이 제 때가 되면 꽃이 되어 내 하루하루를 수놓는다.


태양이 세상을 비추듯, 내 정원에서 피어난 향기가 누군가의 아침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하루가 되기를.

내일 아침, 네 번째 씨앗을 심을 예정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번엔 또 어떤 꽃이 필까.


손끝에서 시작된 정원이 어디까지 자랄지, 나도 모른다. 다만 오늘도 한 줄을 쓴다. 씨앗 하나를 심는 마음으로.


KakaoTalk_20250712_080838763.jpg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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