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필사 #4
구름이 걷히고,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햇살이 강을 어루만졌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 풍광이 말을 걸어왔다.
"너는 지금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니?"
해석한다는 건 사실을 내 언어로 되새기는 일일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인다고 모두 같은 풍경은 아니다. 어떤 이는 찬란한 아침을 희망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찬란함에 쓸쓸함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같은 장면을 다르게 느끼는 걸까. 나는 지금 주식 강의를 한다. 수많은 숫자와 용어,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난수표 같다. 하지만 같은 차트를 보고도 누군가는 '위험'을, 누군가는 '기회'를 읽어낸다.
내게 주어진 일은 그 '사실'을 누군가의 마음에 닿게 해석해 주는 일이다. 재미없고 복잡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게 전하는 일.
회원들이 종종 말한다. "대표님 강의는 질질 끌지 않아서 좋아요. 필요한 것만, 딱 맞게 알려줘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 내가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수 있구나.’ 해석이란 결국, 내가 얼마나 깊이 들여다봤는가의 문제다. 표면의 말이 아니라, 속에 깃든 맥락까지 읽어내는 힘.
"나는 이 하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좋은 날이란 무엇일까. 풍경이 예뻐서? 일이 잘돼서? 아니, 그 모든 사실을 감사하게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 나의 삶도,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그저 그런 하루일지 모르지만 내가 이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해설가로 살아간다.
보이는 것을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온기와 이야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명료하게,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