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필사 #19
세상은, 보느냐 보지 않느냐의 차이로 갈린다.
어떤 이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본다.
어떤 이는 보여줘야 겨우 본다.
그리고 어떤 이는 보여줘도 끝내 외면한다.
그 ‘본다’는 행위 속엔
이미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어떻게 보느냐는,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맞닿아 있으니까.
나는 그동안 ‘내 일’에만 열려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엔 발 빠르게 반응했지만,
나와 직접 상관없는 것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무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 집중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질문이 생겼다.
이건 정말 나와 무관한 걸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췄고,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상관없는 것’에 무심하다.
하지만 관계없다고 느꼈던 풍경이,
언젠가 내 삶을 바꾸기도 한다.
문제가 시작되는 지점엔 언제나
‘시선의 부재’가 있다.
그러니 이제는 보자.
무엇이든, 일단 한 번 보자.
거기서 생각이 시작되고,
생각은 결국 나만의 방향이 된다.
B형인 나는, 무심한 데가 있다.
누가 속상하다고 말해도,
마음보다 상황을 먼저 따졌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그 무심함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시선 밖에서
오래 서성였던 사람이다.
그걸 알고 나니,
세상이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일단 보자.’
습관처럼 적은 말이지만
그 문장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내 시선을 바꿔 놓았다.
길에서 스쳐간 문구,
무심히 던져진 말 한마디,
버스 유리창에 비친 내 표정까지도
이젠 의미를 품고 내게 말을 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무언가를 보고,
그 안에서 질문이 자라날 때.
문제가 생겼다는 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생각이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문제는,
삶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깊이 들여다보라"라고,
"다르게 생각해 보라"라고.
생각은 조용히 자란다.
조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문장마다 한 번씩 숨을 고른다.
넘치지 않게.
덜어내듯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천천히 울릴지도 모르니까.
문제를 피하려 애쓰던
그 시간도 결국 나를 위한 여정이었다는 걸.
문제를 보는 눈이 생기자,
문제를 넘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그리고 나를 향해.
오늘도 나는
그 문장 앞에 멈춘다.
"일단 보자."
“문제는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거는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