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필사#69(D+310)
사람은 자신에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다른 모든 말은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으며 그 안에 숨어 있는 현상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김종원 작가-
9살부터 50대까지, 키는 자랐지만 슬픔의 크기는 늘 같았다.
9살, 아버지가 떠났을 때.
10살 할머니마저 떠났을 때,
21살, 동생이 갑자기 떠났을 때.
41살,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하고 남편을 떠나보냈을 때,
50대 중반, 엄마를 마지막 배웅할 때.
상복을 받아 입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지만 언제나 다음이 있었다. 슬픔에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물었다. "어떻게 그 모든 걸 견뎠느냐"라고.
견뎌서가 아니다. 견딜 수밖에 없어서였다. 아침은 어김없이 왔고, 해는 떠올랐고, 잔인하게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했으니까.
어느 날 깨달았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살아간다는 걸.
혼자 남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삶이 버거운 사람들이 내 곁으로 왔다.
내가 겪은 슬픔이 다른 이들의 슬픔을 알아보는 눈이 되어주었다. 내가 흘린 눈물이 다른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되어주었다.
마흔을 넘어서야 알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는 걸. 사랑했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내 안에서 살아간다는 걸.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 할머니의 자장가, 동생의 웃음소리,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까지. 모든 게 내 안에 남아있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 쓰는 말들, 아픈 사람을 돌볼 때 쓰는 손길,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어깨, 이 모든 게 그들이 내게 남겨준 선물이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가장 큰 사랑에서 나온다는 걸. 가장 아픈 이별은 가장 소중한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떠나간 사람들은 내게 두 가지를 남겨주었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남은 사람들을 더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오늘도 누군가는 처음으로 이별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그 아픔 끝에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