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92(D+333)
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죠. 그런데, 그 성장의 재료가 달콤한 칭찬이 아니라 뼈아픈 지적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최근, 제 삶의 가장 소중한 멘토인 두 딸에게서 '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습니다. 니체의 깊은 철학과 일상의 경험이 교차했던, 그 통찰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니체의 이 문장은 단순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라'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에 멈춰 서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나은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을 의미합니다. 마치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듯, 스스로가 되고 싶은 최종적인 모습을 향해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의지. 그 전진이야말로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입니다.
결국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그토록 되고 싶은 당신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제 딸들과 쇼핑을 하고 나오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들이 문득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엄마가 말을 할 때 조금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있어."
솔직히,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내가 엄마인데', '내가 먼저 살아본 사람인데' 하는 얄팍한 방어심리가 먼저 발동했죠. 충고는 언제나 듣기 싫고, 나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듣고 싶은 말' (칭찬, 격려)만 필터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어서 한 말이 제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엄마, 이건 우리 같은 딸들이 아니면 아무도 엄마한테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야. 그리고 엄마는 이걸 충분히 받아들여서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가 용기 내서 하는 말이야."
아이들의 말속에서 저는 '사랑'을 읽었습니다. 저를 비난하거나 평가한 것이 아니라, 더 기품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 내어 건넨 것이었습니다.
나의 성장을 돕는 말은 대부분 불편합니다. 그것은 나의 습관, 나의 아집, 나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겨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들어야 할 말'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파괴적인 습관을 깨고 '되고 싶은 나'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습니다.
결국 니체의 명언은 우리에게 자세를 요구합니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비판과 충고까지도 나의 운명을 완성하기 위한 소중한 재료로 받아들이는 자세. 딸들에게 들었던 그 불편한 충고가 저에게는 '말'이라는 영역에서 더 나은 제가 되기 위한 숙제이자 애정의 징표였습니다.
듣고 싶은 말이 아닌, 들어야 할 말을 들으며 그 불편함 가운데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스스로의 운명을 창조하는 자의 유일한 길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결코 쾌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듯, '내가 그토록 되고 싶은 나'를 위해 듣기 싫은 소리까지 껴안고 나아가세요. 그 불편함과 고통이 바로 당신의 운명을 한층 더 고귀하게 만들 재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