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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지만 합창은 하고 싶어 (1)

불협화음의 시작

by 서글

저는 내성적인 편이에요.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서 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워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거나 정말 편한 사람들 앞에서만 부르곤 했죠. 특히 어색한 회식 자리에서는 가만히 앉아 탬버린만 흔들다 가기도 했어요.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평소에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저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어요. 부르다가 삑사리가 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았고, 낮은 목소리가 컴플렉스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SNS를 둘러보던 중, 군대 후임이지만 한 살 나이가 더 많았던 형의 게시물을 보게 됐어요. 현재 자기가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에서 세계 합창 대회를 나가기 위해 추가 단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죠. 신청 자격도 간단했어요. 앞으로 있을 20번 가량의 연습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 합창단의 활동 영상들을 쭉 보니 밝고 귀여운 에너지가 가득한 팀이었고, 이 팀의 일원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전역 후 5년 가까이 흘러 지인에게 연락을 하기가 조금 민망했어요. 뜬금 없이 내 노래를 보내면서 함께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야 했으니까요. 노래 영상 하나와 춤 영상 하나를 오디션용으로 제출해야 했어요. 저는 민망한 마음에 지인을 통하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정식 지원 절차를 밟기로 했어요. 제출 마감 기간이 지나고 2주 정도가 지나갔고, 저는 당연히 탈락했겠거니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죠. 연락 안하길 잘했다 생각하면서요. 그러던 저녁, 지휘자님으로부터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고 합창단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하루에 5시간 씩, 일주일에 세 번이라는 연습 스케쥴이 잡혀 있었어요. 15분 가량의 쇼콰이어 무대를 만들어야 했고, 베이스 파트를 배정 받았어요. 초반에는 노래 위주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평소에도 노래 가사를 잘 못 외우는 제게는 15분 분량의 노래를 외우는 것부터 힘든 일이었죠. 가사는 또 얼마나 헷갈리던지요. 평소 아이돌 노래를 잘 듣지 않았는데, 덤디덤디, 루시퍼, 디토 등 다양한 노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어요. 아, 제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참 좋은 노래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은 말 그대로 불협화음의 시작이었어요. 30명의 단원들이 모여 앉아 함께 연습을 하였는데, 옆에서는 테너가, 앞에서는 소프라노가, 저 쪽에서는 알토가 각자의 파트를 부르는 좁은 공간에서 내 파트의 정확한 음정을 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악보대로 부르려다가도 옆에서 부르는 음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곤 했어요. 베이스는 리듬을 잡아주는 역할으로써, 남들과 아예 다른 가사와 리듬을 가창하는 부분도 있었죠.


여기까지가 두 달 간의 짧지만 길었던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다른 글에서 연습 과정과, 세계 대회 당일 무대에서 느꼈던 감정을 적어볼까해요. 이 때까지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연습 시간이 될 줄로만 알았지만, 고된 훈련의 시작이었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합창을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음을 만들고,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멀리서 동경하며 바라만 볼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저도 한 번 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합창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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